차량 결함 입증 책임 '소비자→제조사' 제조물 책임법 개정 촉구
국회 임기 만료 시 청원·법안 '자동 폐기'…유족 "또 청원할 것"
"21대 국회서 도현이법 통과를…" 급발진 의심사고 유족의 호소
"도현이법 개정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분들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임기 만료 전까지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주십시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도현 군의 아버지가 이른바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제정을 촉구했다.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는 26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의 다섯번째 변론기일 진행에 앞서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제21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일인 5월 29일까지 두 달 정도 남았다.

21대 정기 국회 일정은 끝났지만, 남은 기간 중 국회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임시국회 및 본회의 개회가 가능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급발진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제대로 일해주길 간곡히 호소드린다.

제조사 눈치 보지 말고, 바삐 움직인다면 충분히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을 개정할 수 없다면, 22대 국회에서라도 반드시 실행시켜달라"며 "국민동의 청원이 폐기된다면, 저는 또다시 국민동의 청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이씨의 모친 A(60대)씨가 손자 도현 군을 태우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몰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도현 군이 숨졌다.

이후 이씨 가족이 지난해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도현이법 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피해자가 차량 결함의 원인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법을 '차량에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동차 제조업자 등이 입증해야 한다'고 바꾸어 제조업자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사고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만 5개지만,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조사와 산업계에 미칠 부담을 우려해 난색을 보이면서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결국 이들 법안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놓여있다.

국민동의 청원 역시 법률안 등과 마찬가지로 국회 임기 만료 시 폐기된다.

이날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상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운전자 A씨 측과 제조사 간 손해배상 청구 소송 변론기일에서 운전자(원고)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분석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변속장치 진단기'를 활용한 구체적인 감정 방법을 제시했다.

급발진 현상이 나타난 도로에서 주행하면서 얻은 속도, 분당 회전수(RPM), 가속페달 변위량, 기어 변속단수 등 주행 정보 국과수 감정서에 기재된 내용을 비교하면서 국과수의 분석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제조사(피고)가 변속장치 진단기를 제공하면, 원고 측은 사고 차량과 같은 연식의 차량을 준비해 내달 15일 전에 경찰 통제하에 사설 전문기관에 의한 감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원고 측은 또 '제동등 점등 방식'과 관련해 "ECU 상태와 제동등 점등 간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추가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ECU는 자동차의 주 컴퓨터이자, 사람으로 따지면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다.

피고 측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ECU 상태와 관계없이 제동등이 들어온다"고 주장하지만, 원고 측은 "제동등을 켜는 전자식 모듈인 BCM(차체 제어 모듈)이 있고, BCM은 ECU와 상호 소통하면서 ECU의 제어를 받기에 피고 측 주장은 틀렸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음 변론기일은 5월 14일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