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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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서울 서초동의 한 청소년도서관에선 성인 남성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30여분 동안 나오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인지한 도서관 측은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남성은 "급해서 잘못 들어갔다"고 해명했지만 도서관 측은 “실수였다면 오랜 시간 화장실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신고했다"고 했다.

타 성별이 이용하는 장소에 들어가는 '성적목적 다중장소 침입 범죄'가 매년 늘고 있다. 본인의 욕망을 충족하려는 의도로 몰래 침입했다가 처벌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실수로 들어갔다가 연루당하는 사례도 있다.

26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분기별 범죄동향리포트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상의 성적목적 다중장소 침입 범죄 건수는 2022년 621건으로 2021년 548건 대비 1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554건이 발생해 이미 2021년 건 수를 넘어섰다.

성적목적 다중장소 침입 범죄는 성적 용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다중이용장소에 침입하거나 같은 장소에서 퇴거의 요구를 받은 뒤에도 응하지 않으면 성립된다.

기존엔 공중 화장실, 목욕탕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장소에서만 성립하는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범죄로 처벌됐다. 2017년 기점으로 다중이 이용하는 장소로 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범위가 확대됐다. 공공장소에 해당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지금은 화장실과 같은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목욕장·목욕실, 모유수유시설과 탈의실 같은 다중이용장소도 포함된다.

지난 24일엔 여장을 한 채 서울 송파구 올림픽수영장 내 여자 탈의실에 들어갔던 30대 남성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성적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수로 다른 성별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신고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25일 서울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 인근 B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이용하던 남성 박 모씨(29)는 용변이 급해 순간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화장실 입구에 표시된 남녀 표지판과 실제로 문에 걸린 남녀 표지판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씨는 "급해서 들어갔다가 한 순간에 범죄자가 될까 봐 식겁했다"며 "고의성이 전혀 없었지만 한편으론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서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 한 프렌차이즈 화장실 앞의 모습. 천장에 붙은 표지판에선 왼쪽이 남자 화장실을 가르키고 있지만, 실제 왼쪽편은 여자화장실, 오른쪽 편이 남자화장실이다. 사진=독자 제공
서울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 한 프렌차이즈 화장실 앞의 모습. 천장에 붙은 표지판에선 왼쪽이 남자 화장실을 가르키고 있지만, 실제 왼쪽편은 여자화장실, 오른쪽 편이 남자화장실이다. 사진=독자 제공
화장실 문 앞에 붙인 픽토그램(그림)이 애매해 실수를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엔 여자 화장실은 분홍색, 남자 화장실은 파란색으로 표기됐지만 최근엔 성별에 관계 없이 색을 통일한 곳도 많다. 그림이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기 어렵게 그려져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남자는 바지를, 여자는 치마를 입은 표지판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바지를 입은 여자 표지판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색으로 표기한 화장실 표지판. 사진=온라인 갈무리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색으로 표기한 화장실 표지판. 사진=온라인 갈무리
다른 성별의 다중 장소에 실수로 들어갔다가 신고를 당할 경우 피의자는 스스로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목적이 없다면 성적목적다중이용장소침입죄는 성립할 수 없다”면서도 “실수로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고의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