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반응은 '?' 한 글자 불과…"교수들, 우리 대표 못한다" 목소리도
의료계 '단일창구' 마련도 요원…전공의, 교수, 의협 각각 자기주장만
'2천명 증원 백지화' 요구에 정부는 수용 거부…"협상안 나오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듯"
대화 제의에도 전공의 '무대응' 일관…의료계는 '구심점' 못찾아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의 해법을 찾고자 정부가 의료계와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전공의들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협상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의료계도 정부와 대화하려면 '대표성' 있는 단일 창구를 마련해야 하지만, 전공의, 의대 교수,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의 주장과 생각이 각각 달라 협상 주체로 나설 '구심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계가 협상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는 '2천명 증원 백지화' 요구에 정부는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의정(醫政)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에는 모두 찬성하지만, 그 해법을 찾는 과정이 이렇듯 난관에 부딪히면서 협상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화 제의에도 전공의 '무대응' 일관…의료계는 '구심점' 못찾아
◇ 정부 잇단 제의에도 전공의 '묵묵부답'…의대 교수 '대표성' 문제삼기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에 이어 26일에도 의료계에 정부와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의대 교수진을 비롯한 의료인들은 의료개혁을 위한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며 "제자인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주요 대학 총장, 의대 학장, 병원장 등을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의 건설적인 대화체 구성을 제안했다.

정부가 이렇듯 적극적으로 대화 의지를 드러내자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등 교수들도 '중재자'를 자처하며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침묵하고 있다.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묵묵부답'이다.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윤 대통령이 의료계와 대화를 제안했다는 소식에도, 정부가 전공의 면허 정지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에도, 의대 교수들과 여당이 중재를 자처했다는 소식에도 오직 '침묵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지난 24일 오후 9시 56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라는 한 글자만 남겼다.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 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고,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주문한 당일이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이라는 의미심장한 한 글자만 가지고서는 전공의들이 과연 어떠한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하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대화 제의에도 전공의 '무대응' 일관…의료계는 '구심점' 못찾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계는 전공의들의 '입'만 바라보는 처지가 됐다.

전공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의료계와 정부의 협의가 사실상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의료계와 정부가 설사 타협안을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전공의들이 이를 거부하면 모든 일은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

의대 교수들도 전공의들의 참여 없이는 사태 해결은 물론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저희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전공의라고 밝혀왔다"며 "협의하는 과정은 전공의협의회가 주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대화 파트너로 거론되는 의대 및 수련병원 교수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직한 인턴 류옥하다 씨는 "교수협의회는 전공의나 의료계를 대변하지 못한다"며 "결단코 어느 전공의도 (교수들에게) 중재를 요청하거나 권한을 위임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교수들과 대화하겠다는 건, 노조가 사직했는데 사측 대표이사를 만난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며 의대 교수들의 대표성을 깎아내렸다.

대화 제의에도 전공의 '무대응' 일관…의료계는 '구심점' 못찾아
◇ 의료계 '단일창구' 요원…전공의, 교수, 의협 각각 자기주장만
전공의들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의료계도 정부와 대화하려면 '대표성' 있는 단일창구를 마련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전공의 사이 중재자를 자처한 교수단체는 전의교협과 전국의대교수 비대위 2개다.

이 가운데 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를 해결하고자 지난 12일 출범했다.

전의교협은 의협과 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와 소통하겠다고 했으나, 앞으로 정부와의 대화에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참여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임 의협 회장의 등장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의협은 이날 저녁 제42대 회장 선거 결선 투표를 마감한 뒤 당선인을 발표한다.

대한소아청소년과회장인 임현택 후보와,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자 제35대 의협 회장을 지낸 주수호 후보가 맞붙었다.

두 사람 모두 정부를 향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 왔던 터라 누가 당선되더라도 정부와의 대화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신임 의협 회장이 전의교협 등 교수단체와 손발을 맞춰 대화에 참여할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차기 의협 회장 후보는 단 한 명의 증원도 필요없다는 '초강경' 입장이다.

임현택 후보는 출생아 수 감소를 근거로 아예 의대 입학정원을 500∼1천 명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주수호 후보는 "의대 증원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정부와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화 제의에도 전공의 '무대응' 일관…의료계는 '구심점' 못찾아
더구나 해결의 열쇠를 쥔 전공의들은 교수는 물론 의협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전공의들 입장에서 교수는 근무와 수련 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이해관계 당사자이고, 의협은 2020년 안 좋은 기억을 남겨준 선배 의사들이다.

당시 전공의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나섰는데, 의협이 정부와의 막판 협상에서 전공의들을 배제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의료계가 전공의, 교수, 의협, 의대생 등 모두의 '중지'를 모아 단일창구를 마련하더라도 이후 협상이 쉽지 않을 터인데, 이렇듯 분열된 모습을 보이면서 협상의 전망을 비관하는 관측이 제기된다.

더구나 의료계는 '2천명 증원 백지화'를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협상 테이블에 양측이 앉을 수 있을지조차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의대 증원 규모가 대학별로 확정됨으로써 의료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 만들어졌다"며 "의대 증원은 의료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지금 의료계와 정부 모두 만족할만한 협상안이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합의점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