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처리 방안 모색" 당부에 당정, 대화 실무작업 착수
"2천명 증원부터 철회하라" 의사들 강경론에 '접점' 찾기 쉽지 않을 듯
"원칙 훼손하면 앞으로 집단행동 못 막아" 우려도
尹 "대화하라" 지시에 '해빙' 모드?…견해차 커 '난항' 예상
제자인 전공의들에 이어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으로 의정(醫政)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당정이 '급한 불'을 끄고자 대화의 손을 내밀었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잠시 뒤로 미루면서 의사단체들과 본격적인 대화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이 '의대생 2천명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고, 이번 사태를 주도한 전공의들의 정부에 대한 반감이 거센 상황이라, 양측이 대화 테이블에 앉더라도 실질적인 접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원칙'을 훼손하는 타협을 추진할 경우 의료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尹 "대화하라" 지시에 '해빙' 모드?…견해차 커 '난항' 예상
◇ '무더기 면허정지·교수 집단사직' 앞두고 극적 대화 가능성 열려
24일 대통령실 대변인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시한이 다가오자 이날 한덕수 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 대변인실의 설명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50분가량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25일은 이달 초 가장 먼저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의 의견 제출 마감일로, 이들이 끝내 의견을 내지 않으면 정부는 26일부터 바로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다.

더욱이 25일은 전국 의대 교수들이 제자들에 이어 일제히 사직서를 던지기로 결의한 날이다.

대통령실의 지시는 전공의들의 무더기 면허정지, 그리고 그동안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워 온 의대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났을 때 벌어질 '의료대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또 한 총리에게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그동안 2천명 증원의 이유를 포함해 모든 의제를 두고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의사단체들에 '대표단'을 구성해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해왔다.

아직 의사단체들의 대표단이 구성되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대화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조윤정 고려대 의대 교수의회 의장은 최근 전의교협 브리핑에서 "(의료계) 단체가 서로 협의하면서 정부와 마음을 터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서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의교협과는 별개 단체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방재승 위원장도 "정부가 전공의 조치를 풀어주고 대화의 장을 만들면 저희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날 대통령실의 발표에 앞서 각 의사단체 관계자들이 한데 모임에 따라 협상의 구심점이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

의료계는 최근 의대 교수들이 주축이 된 온라인 회의에서 각 단체의 의견을 공유한 데 이어,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 회의에서 또다시 머리를 맞댔다.

회의에는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 등 비대위원 20여명이 오프라인으로 참석했고, 의대 교수들과 전공의들도 온라인으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정부의 대화 제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대교수 비대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에 대한 압박 중 일부를 중단한 것과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부분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며 "협의체에서 논의할 의제와 협의체 구성 및 운영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신속히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尹 "대화하라" 지시에 '해빙' 모드?…견해차 커 '난항' 예상
◇ 접점 찾을 수 있을까…'증원 철회' 등 놓고 난항 예상
대전협은 이번 사태를 주도한 전공의들의 협의체로, 그동안 정부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대전협은 집단사직 직후 ▲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2천명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 전공의 대상 명령 철회 및 사과 ▲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하지만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천명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는 그동안 정부에서 절대로 변경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온 사안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일 기존보다 총 2천명 늘어난 의대별 입학정원을 공식 발표하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은 상태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정부가 '의료개혁'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보는 정책들로, 정부는 이에 맞춰 필수·지역의료 강화책, 대형병원과 중소형 병원의 역할 분담 등 개혁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설령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더라도 두 사안에 대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협상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미 일부 의대 교수들은 '2천명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정부의 대화 제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김미나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2천명 증원을 철회하고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대로 갈(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춘학 고대 의대 비대위원장도 "구체적인 것도 나오지 않은 상태인 데다, 2천명 의대 정원은 배분이 끝난 상황"이라며 "'2천명' 철회 없이는 사직서 제출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 모색은 좋지만, '원칙'을 훼손한 협상을 추진할 경우 의료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한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발언처럼, 정부가 원칙 없이 움직이면 다시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휘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원칙이 훼손돼선 안 된다"며 "이달까지 복귀하는 전공의들을 선처는 할 수 있어도 아예 없었던 일이 되면 앞으로도 이런 고질적 진료거부 행태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