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와 같은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받게 되는 기부채납(공공기여) 산정 방식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가운데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서 처음에 받기로 한 기부채납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물가 상승 리스크 보완”

땅값 뛴 'GBC 부지'…서울시 "기부채납 더 해야"
24일 서울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초 기부채납액을 산정한 후 사업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기부채납 규모를 재산정할 수 있는 근거조항 등을 마련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리스크가 커져 이를 사업자와 적절히 분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현금으로 기부채납을 받는 경우에는 이를 지가와 연동하는 등 여러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 같은 변경을 검토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현대차의 GBC 개발이다. 현대차는 2014년 이 부지(사진)를 사들인 후 일찌감치 공사를 계획했지만, 경제환경 변화와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지금껏 터파기 공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는 2016년 현대차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면서 당시 토지 가격을 기준으로 기부채납 규모를 1조7000억원으로 산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흐른 데다 계획이 크게 변경된 만큼 8년 전 산정한 기부채납 규모가 이제는 적정하지 않다는 게 서울시의 판단이다.

단적으로 해당 부지의 표준 공시지가는 2017년 ㎡당 3350만원에서 올해 ㎡당 7565만원으로 두 배 넘게 올랐다. 토지 등 부동산으로 받았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대부분 현금으로 받기로 한 탓에 애로사항이 생겼다. 서울시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과 잠실주경기장 리모델링에 현대차로부터 순차적으로 받은 현금 기부채납액을 투입하고 있는데 최근 공사원가가 급격히 올라 시공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축시스템은 작년과 올해 낮게 제시된 공사비 때문에 두 차례 유찰됐다.

현대차 “서울시와 원만히 협의할 것”

현대차가 초고층 설립 계획을 철회한 것도 서울시가 기부채납 규모 재산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배경이다.

현대차는 최근 이 부지에 105층 1개 동과 저층 건물 4개 동을 지으려던 계획을 55층 2개 동과 저층 건물 4개 동으로 변경하는 제안서를 제출하며 기부채납 규모를 적시한 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에 관해 ‘변경사항이 없다’고 적었다.

반면 서울시는 2019년 현대차와 사전협상 방식으로 GBC 인허가를 진행하면서 105층 랜드마크(569m) 건설을 전제로 현대차 측에 여러 혜택을 준 만큼, 변경된 계획을 바탕으로 기부채납 규모를 다시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105층 전망대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나 도로 공사도 기부채납으로 인정했는데 이런 부분이 달라졌으니 재협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해 조만간 현대차 측에 재검토를 정식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기업 활동에 딴지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며 “다만 처음에는 105층 전망대를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이 부분이 없어지게 돼고, 오래전에 산정한 기부채납 규모가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다 보니 공공성과 형평성을 감안해 다시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시 관계자는 “현대차가 계획 변경으로 사업비를 최대 3조원 가까이 절약하는데 시민의 관점에서는 더 나아지는 게 없다”며 “절약한 공사비 일부는 공공기여로 환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차 측은 이와 관련해 “아직 재검토 요청을 받지 못했으며, 서울시와 원만히 협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상은/박진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