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현대미술은 대중화되고 있다. 수많은 예술 행사와 전시가 성행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의 예술 향유 욕구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후기 자본주의 이후, 미술작품은 마치 채권과 증권처럼 대체 금융상품이 되어 버렸다.

미술작품의 가격과 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 이 작품은 백억, 이 작품은 백만 원, 이 작품은 좋은 작품, 이 작품은 안 좋은 작품, 누가 어떻게 예술작품의 가치를 정하는 것일까?
대중이 먼저 알아보는 현대미술 … 예술평가 시스템의 전복
예술계에는 가치평가인증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국제 예술계에 영향력이 있는 비평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컬렉터, 저널리스트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의 상호 소통, 공감, 합의로서 예술작품의 가치가 결정되어 왔다. 작품의 미학적, 경제적 평가와 더불어 그들의 논의에 따라 미술사적 흐름도 규정되었다. 또한 그들의 예술 전문성은 곧 엄청난 권위이자 권력이었다. 이러하기에 ‘비전문가인 대중이 이 전문가들의 미적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신성이 필요하다’ 라고들 했다. 즉 이제까지 현대미술계에는 전문가인 예술인과 비전문가인 대중 간의 미적 감성의 간극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얘기다.

지리적 관점으로 본다면 이 가치평가인증 시스템은 서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유럽 통합 이후, 영국으로 잠깐 이동하였다가 21세기에는 중국으로까지 확장된다. 공교롭게도 이 시대적 예술 권력의 이동은 세계 경제시장의 중심 이동과도 일치한다.
대중이 먼저 알아보는 현대미술 … 예술평가 시스템의 전복
한국 예술가들의 해외 유학 발자취나 선호하는 해외 미술관의 변화를 갈무리해 보면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과거 많은 한국작가들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지엔느가 되었으며, 이후에는 뉴욕의 소호로 가서 뉴요커가 되었다. 그러더니 다들 런던 골드스미스 미술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또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구겐하임이나 모마,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싶어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에 현대미술의 가치평가인증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먼저 알아보는 현대미술 … 예술평가 시스템의 전복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필자는 21세기, 디지털 기술의 혁명과 민주적 공론장의 출현은 예술의 가치평가인증 시스템에도 큰 변화를 만들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전문가의 미적 판단이 비전문가로 낙수되었던 일방적 흐름이 포스트 디지털 시대로 진입해서는 다방향성으로 전복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들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 합의가 도출되어지는 또 다른 예술 가치평가 시스템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나의 예술은 가볍습니다. 왜 무거워야 하죠? 나의 인스타 팔로워는 10만 명이 넘어요. 제 작업은 저렴하지만, 엄청 많이 팔리죠. 전 이미 유명하고 내 작업은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있어요. 뭐가 문제죠?”

이렇게 말하는 젊은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전문가의 인정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렌드 팔로워였던 일반 대중의 인정으로부터 시작되어 역류하며 상부 전문가들에게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보자. 뱅크시, 루양, 카오스, 로버트 얀슨, 다니엘 아샴 등과 같은 셀럽 작가들은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대중에 의해 인지도가 형성되었고, 지금도 엄청난 추앙을 받고 있다.
사진 = 뱅크시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 = 뱅크시 인스타그램 캡처
물론 이들 중 일부인 뱅크시, 루양같은 몇몇 작가들은 전문가로 이루어진 기존의 예술 가치평가의 영역에 흡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비전문가인 대중의 예술 가치평가의 영역 안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업으로 격상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과거의 선형적, 위계적이었던 미술 생태계는 동시대에 비선형적, 비위계적인 미술 생태계로 전환되었고, 예술 비평의 정석과 비정석을 구분하여 정의하는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포스트 디지털시대에 일반 대중들의 미적 가치관은 더욱 확장되고 다양화되고 있다. 전문가의 예술 평가 시스템이라는 기존의 축과 비전문가의 예술 평가 시스템이라는 또 다른 축은 시간이 갈수록 그 경계를 공유하며, 두 축 사이의 교류를 확장시킬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을 엄숙주의으로부터 해방, 일상화시킨다. 우리의 사회는 대의 민주주의에서 직접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필자는 예술의 영역과 일상의 영역이 해체되며, 예술의 공유와 소유의 민주화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소망한다.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