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신라 천 년의 숨결,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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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했지만 만나볼 수 없었던 신라의 고귀한 역사가 디지털로 재현된다.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유산들과 첨단 기술로 구현된 1000년의 시간. 옛것과 새것 사이, 올드 앤 뉴(Old & New)의 교차점에서 경주를 만났다.

일렬로 늘어선 푸릇한 오죽을 따라 걷다 보면 신라고분정보센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일부로 2020년 12월 착공해 2023년 6월 30일 개관했다.
센터의 자랑은 ‘실감 영상’으로 불리는 디지털 영상 콘텐츠. ‘아르떼뮤지엄’을 연상케 하는 증강현실(AR) 전시가 신라 고분 콘텐츠와 만나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35m의 미디어월을 갖춘 디지털 실감 영상실에서 신라 고분 1000년, 신라인의 삶과 죽음, 천마총 발굴 50주년, 하늘에서 본 고분 등 신라 고분의 역사와 풍경을 담은 디지털 영상이 시간별로 상영된다.

경북 감포 문무왕릉 인근 동해 바다가 미디어월을 넘어 바닥까지 밀려오자 관람객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발밑으로 부서지는 푸른 파도가 실제 바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고분의 도시’ 경주를 하늘에서 바라본 드론 실감 영상까지 감상하고 나니 신라 1000년의 시간이 성큼 와 닿는다.
관람객을 위한 세심한 설계와 숨은 이야기도 눈에 띈다. 대릉원으로 향하는 벽 한 면을 창문으로 설계해 노서동 고분군 뷰를 조망할 수 있다. 오직 경주에서만 펼쳐지는 특별한 전망에 외국인 관광객이 일제히 모여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꺼내 든다. 입구의 천장은 돌무지덧널무덤의 주곽·목곽 구조를 차용해 실제 크기로 디자인했다. 모르고 봐도 흥미롭지만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공간이다.
가장 역사적이고 가장 현대적인
노서동 고분군에는 또 하나의 건축물이 웅크리고 있다. 달팽이를 닮은 나선형 돔구조물의 정체는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의 모양새를 본떠 만든 금관총 보존전시관이다.금관총은 최초로 신라 금관이 발견된 터다. 보통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왕족·귀족의 묘인 것은 확실하지만 주인을 알 수 없는 능은 ‘총’이라 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금관총 역시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이었다.

금관총 전시관은 길이 48m, 높이 12m의 규모를 자랑한다. 봉분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내부는 돌무지덧널무덤의 원형을 구현해 과거 웅장함을 자랑했을 고분의 실제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흙과 돌을 그대로 사용했고 목조 구조를 1 대 1로 재현했다. 고분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체험시설을 통해 43인치 증강현실(AR) 모니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덤 곳곳을 비추면 축조 과정을 디지털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서라벌의 랜드마크를 찾아
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신라시대의 수많은 황금 유산이 산재해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남산·월성·대릉원·황룡사·산성 지구)’ 5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중 황룡사 터와 분황사 터를 간직한 황룡사 지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타깝게도 고려 말 몽골군의 침입으로 목탑은 물론 장륙존상 전각 등 황룡사 전체가 불에 타 소실됐다. 터만 남은 신라 최고의 사찰, 경주 황룡사의 못다 전한 이야기는 바로 옆에 위치한 황룡사지 황룡사역사문화관에서 엿들을 수 있다. 황룡사 건립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황룡사 발굴조사 터가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망대 등을 갖췄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2025년까지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을 추진한다. 실물 복원이 어려운 황룡사 9층 목탑과 중금당을 포함한 주요 건축물이 3D 디지털 콘텐츠로 복원된다. 천년 신라왕경의 대표 유적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
월성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신라시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된 월성 해자. 1500년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거 월성 해자와 그 주변의 옛 환경을 생생한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특별기획전시 ‘실감: 월성 해자’와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공간은 2개의 전시관과 통로로 구성됐다. 1전시실에서는 월성 해자의 축조 과정과 함께 출토된 동·식물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부터 푸른 수생식물이 꽃을 피우는 여름, 붉은빛으로 물든 가을, 눈 덮인 사철나무에 눈이 시린 겨울까지.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월성 주변의 사계절이 펼쳐진다.

주경도 아름답지만, 어둠이 내린 해자는 그 아름다움이 배가되니 야경도 놓치지 말 것. 경주 월성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옥마을 교촌마을과 원효대사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월정교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