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인의 25% 선거 참여…정치를 포기하면 미래가 사라진다[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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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앤셀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올해 세계 인구 25%가 선거 참여
정치로 민주주의를 길들여야
올해 세계 인구 25%가 선거 참여
정치로 민주주의를 길들여야
22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대한민국 곳곳이 정치 이야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치와 정치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반감과 혐오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계 네거티브성 공방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부추긴다.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벤 앤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정치를 가리켜 '양날의 검'이라고 설명한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를 혐오하든 집착하든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뭔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결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앤셀 교수는 책에서 다섯가지 중요한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을 구체화한다.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 등의 가치다. 각각의 가치가 왜 중요하며 그것이 안고 있는 '덫'(문제)은 무엇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등을 설명하는 식으로 각각의 장이 전개된다.
오늘날 대부분 다수결의 옷을 입은 선거와 민주주의는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제아무리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선거라고 해도 훌륭한 정치인의 선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종종 공격적인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찬양하는 서구 포퓰리스트들의 등장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정의하는 정치적 흐름이었다. 저자는 정치로 민주주의를 '길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민 모임'을 제시한다. 시민 모임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합의점을 발견하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도록 함으로써 지역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얼마 전 아일랜드는 낙태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기 전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토론 모임을 열었다. 모임에선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과 낙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낙태 찬성 혹은 반대란 극단적인 양극화로 벌어지는 대신에 중도적 입장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광범위하지만 무제한적이지는 않은 형태로 낙태를 합법화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합의를 도출해낸 것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시민 모임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 책이 부와 성장을 이야기하는 번영의 가치를 정치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장도 흥미롭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이 둔한 '자원의 저주'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앤셀 교수는 자원의 저주가 경제적인 영역을 넘어 민주주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자원을 통제하는 지도자들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정부가 땅에서 솟아나는 천연자원의 즉각적인 혜택에 주목하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교육·금융 시스템 구축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노르웨이는 1970년대 중반에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진 이웃 나라인 스웨덴보다 훨씬 가난했다. 석유의 발견이 시민을 더 잘살게 해줬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과세 정책으로 지속적인 미래 투자 예산을 확보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모든 유전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기업 스타토일을 소유하고 있으며, 민간 에너지 기업에 수익의 78%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과세의 과정이 투명하고 일관적으로 이뤄져 신뢰를 받고 있다. 노르웨이가 에너지로 벌어들인 수입은 집권당이나 왕의 지인들이 운영하는 음침한 금고가 아니라 국부펀드로 들어간다. 해당 펀드는 해외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해 노르웨이 기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 로비를 벌일 때 나타날 수 있는 부패나 이익집단의 알력을 피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가 부와 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정치인들이 당장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하는, 나아가 공공의 자금을 유용하려는 단기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의 제목은 정치의 실패를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정치 혐오나 냉소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덫을 마주하며 항상 성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포기하면 너무 과한 정치 혹은 너무 빈약한 정치가 우리를 미래의 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막스 베버는 정치를 가리켜 "딱딱한 판에 서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했다. 이 책은 새로운 정치적 약속을 계속 반복하며 미래로 연결된 구멍을 열어나가자고 권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벤 앤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정치를 가리켜 '양날의 검'이라고 설명한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를 혐오하든 집착하든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뭔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결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앤셀 교수는 책에서 다섯가지 중요한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을 구체화한다.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 등의 가치다. 각각의 가치가 왜 중요하며 그것이 안고 있는 '덫'(문제)은 무엇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등을 설명하는 식으로 각각의 장이 전개된다.
오늘날 대부분 다수결의 옷을 입은 선거와 민주주의는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제아무리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선거라고 해도 훌륭한 정치인의 선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종종 공격적인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찬양하는 서구 포퓰리스트들의 등장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정의하는 정치적 흐름이었다. 저자는 정치로 민주주의를 '길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민 모임'을 제시한다. 시민 모임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합의점을 발견하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도록 함으로써 지역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얼마 전 아일랜드는 낙태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기 전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토론 모임을 열었다. 모임에선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과 낙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낙태 찬성 혹은 반대란 극단적인 양극화로 벌어지는 대신에 중도적 입장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광범위하지만 무제한적이지는 않은 형태로 낙태를 합법화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합의를 도출해낸 것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시민 모임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 책이 부와 성장을 이야기하는 번영의 가치를 정치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장도 흥미롭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이 둔한 '자원의 저주'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앤셀 교수는 자원의 저주가 경제적인 영역을 넘어 민주주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자원을 통제하는 지도자들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정부가 땅에서 솟아나는 천연자원의 즉각적인 혜택에 주목하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교육·금융 시스템 구축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노르웨이는 1970년대 중반에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진 이웃 나라인 스웨덴보다 훨씬 가난했다. 석유의 발견이 시민을 더 잘살게 해줬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과세 정책으로 지속적인 미래 투자 예산을 확보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모든 유전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기업 스타토일을 소유하고 있으며, 민간 에너지 기업에 수익의 78%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과세의 과정이 투명하고 일관적으로 이뤄져 신뢰를 받고 있다. 노르웨이가 에너지로 벌어들인 수입은 집권당이나 왕의 지인들이 운영하는 음침한 금고가 아니라 국부펀드로 들어간다. 해당 펀드는 해외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해 노르웨이 기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 로비를 벌일 때 나타날 수 있는 부패나 이익집단의 알력을 피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가 부와 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정치인들이 당장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하는, 나아가 공공의 자금을 유용하려는 단기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의 제목은 정치의 실패를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정치 혐오나 냉소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덫을 마주하며 항상 성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포기하면 너무 과한 정치 혹은 너무 빈약한 정치가 우리를 미래의 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막스 베버는 정치를 가리켜 "딱딱한 판에 서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했다. 이 책은 새로운 정치적 약속을 계속 반복하며 미래로 연결된 구멍을 열어나가자고 권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