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기술 전쟁의 전장이 바뀌고 있다. 에너지 밀도를 높여 전기차 출력·주행거리를 늘리려던 배터리 제조회사들이 이제 ‘얼마나 빠르게 전기를 충전하느냐’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내연기관차가 주유를 마치는 속도와 비슷한 수준까지 배터리 충전 속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전기차 완전 대중화가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주유 시간과 비슷하게"…전기차, 이젠 충전 속도戰
11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셀 제조사인 삼성SDI는 올해 초 한 글로벌 컨설팅사에 ‘주요 국가 전기차 소비자들의 우려 사항’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의뢰했다가 의외의 결과를 받았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의 전기차 잠재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아직 사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로 일제히 ‘충전 속도’를 꼽았기 때문이다. 전년도 조사까지만 해도 거리, 비용, 안전성 등 구매하지 않은 이유가 다양했지만, 올해는 이유가 하나로 모였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충전 속도 개선을 회사의 최우선 기술 과제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2026년까지 1회 충전으로 600㎞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를 9분 안에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300㎞를 갈 수 있는 에너지를 5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 현재 급속 충전은 배터리 종류에 따라 약 20분~1시간이 걸린다. 충전 속도 기술이 개선되면 현재 약 10시간인 완속 충전 시간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300㎞ 충전에 5분’이라는 수치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운전자의 평균 자동차 주행거리 패턴을 분석한 결과 99.6%가 하루 300㎞ 이내로 운전한다”며 “5분 내 충전으로 대부분 운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시장 수요의 변화를 읽고 있는 건 삼성SDI뿐만이 아니다. SK온은 지난 6일 급속 충전 시간을 15분으로 단축한 SF플러스(+) 배터리를 공개했다. 조만간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SK온은 2030년까지 300㎞ 주행거리 기준 5분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삼성SDI가 내세운 2026년보다 4년 느리지만, SK온 측은 급속 충전기 등 인프라가 갖춰지는 속도를 고려할 때 2030년을 적당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아직 충전 시간 목표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 충전 속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용히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는 6일 ‘인터배터리 2024’에서 기자들과 만나 “급속 충전과 관련해 다양한 기술을 검토 중”이라며 “더블레이어나 실리콘 음극재를 활용해 충전 속도를 강화하는 것을 개발하고 있으며 적정 시점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충전 속도 개선은 배터리셀 제조사로선 난제로 꼽힌다. 생산 비용과 상충 관계에 있어서다. 생산 비용을 유지하면서도 충전 시간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각 배터리사는 충전 속도와 연관이 있는 리튬이온의 이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음극재의 소재 성능을 향상하거나 음극재를 특수코팅하는 자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