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오페라 '이상의 날개' 초연…몽환적인 분위기 살린 합창·영상 돋보여
오페라로 만난 천재 시인 이상…꿈속 헤매듯 펼쳐낸 작품세계
"이상은 누구인가.

지금 어디에 있나.

"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각혈하는 아픈 몸, 떠나간 사랑,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천재 시인 해경(이상의 본명)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괴로워하며 거울 속의 자신, '이상'에게 묻는다.

시인 이상의 작품을 소재로 한 대전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이상의 날개'가 지난 8∼1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을 올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으로 이상의 시 '거울', '오감도', '이런시' 등을 노래로 엮었다.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서사나 시간의 순서와는 무관하게 시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극은 이상의 시 '거울'로 시작됐다.

현실을 살아가는 해경과 거울 속의 인물인 이상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해경이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라고 노래하면, 이상은 "거울 밖의 나는 오른손잡이요"라고 화답했다.

이후 두사람은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 반대요 마는 또 꽤 닮았소"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이상의 시는 작품 전반에서 원작 그대로 노래가 되기도 하고, 해경과 이상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대칭적인 구조로 재해석돼 불리며 청각적으로 입체적인 느낌을 줬다.

특히 파괴적인 형식과 난해한 내용으로 해석이 불분명한 시들은 돌림노래 효과를 내는 중창과 합창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조감도에서 한자 하나(새 조 '鳥')를 까마귀 '오'(烏)로 바꾼 '오감도'나 일본 백화점 구조를 표현했다는 설이 있는 '건축무한육면각체'는 합창의 웅장함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영상으로 표현된 점, 선, 면과 움직이는 기하학적인 도형들은 격변의 시기에 이상이 겪었을 혼란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무대에 펼쳐진 이런 청각, 시각적인 요소들은 띄어쓰기를 하나도 하지 않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을 배열해 시를 쓴 이상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극은 전반적으로 꿈속에서 헤매는 듯한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이상이 사랑에 빠졌던 기생 금홍을 통해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도 등장시켰다.

이상이 폐결핵을 판정받은 뒤 금홍과 헤어지기 전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런시'는 해경의 아리아로 불렸다.

해경은 시구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잊을 수 없소이다' 등을 여러 번 반복해 노래하며 관객들의 감정을 파고들었다.

오페라로 만난 천재 시인 이상…꿈속 헤매듯 펼쳐낸 작품세계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상의 생애 마지막 시기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의상이나 무대연출에 시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홍을 제외한 해경과 이상을 비롯한 인물은 새하얀 옷이나 검은 옷을 입어 시대 배경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또 일제강점기라는 나라를 빼앗긴 역사의 아픔도 이상의 괴로움의 주된 요소로 부각하지 않았다.

이상의 고뇌는 어두운 시대보다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예술가의 비애로 강조됐다.

또 '이상의 날개'는 뚜렷한 서사가 없는 만큼 음악으로 극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아름답고 절절하게 부르는 고전 오페라의 음악들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비장한 선율 속에 불협화음이나 변칙적인 멜로디의 변화가 불안하고 초조한 이상의 내면을 대변했다.

성악가들의 기교를 돋보이기보다는 성악과 기악, 안무, 영상 등이 어우러지는 데 공을 들인 듯했다.

다만 보통 무대 앞에 깊게 파인 공간에 배치되는 오케스트라가 배우들이 서는 무대 앞에 수평에 가깝게 나란히 배치되면서 무대 위 배우들보다도 부각되는 면도 있었다.

일부 아리아에서는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노래가 잘 들리지 않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