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상과 중국 청푸그룹의 전략적 사업협력 조인식 모습. 연합뉴스
2018년 대상과 중국 청푸그룹의 전략적 사업협력 조인식 모습. 연합뉴스
대상그룹이 중국 라이신 생산업체인 흑룡강성복식품집단유한공사(청푸그룹)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중국에서 사료 첨가제인 라이신 업황 부진이 지속되자 라이신 사업 확장계획을 취소하고 매출처를 다변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상은 오는 9월 단행할 청푸그룹 지분 취득 예정액을 당초 265억2750만원에서 88억4250만원으로 지난 7일 정정했다. 지분 취득에 따른 예상 지분율도 32.87%에서 20%로 줄어든다.

앞서 대상은 2021년 8월 청푸그룹 지분 32.87%를 26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에는 대상이 인수 대금 납입일로부터 42개월 이내에 청푸그룹 지분을 51%까지 인수할 수 있는 우선 인수권 조항도 들어있었다. 단순 지분 확보를 넘어 청푸그룹 경영권 확보를 염두에 둔 계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대상은 이번에 계약 조건을 바꾸면서 취득 예정액을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을 뿐 아니라 우선 인수권 조항도 삭제했다. 청푸그룹 경영권 인수 가능성을 더 이상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식품업계에서는 대상의 이 같은 결정에는 최근 라이신 사업 부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대상은 지난해 매출 4조1075억원, 영업이익 1237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전년 대비 0.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1.6% 줄었다. 주력 사업인 식품 부문은 예년 수준으로 선전했지만 라이신 등 소재 부문에서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라이신은 돼지, 닭 등 가축의 발육을 위해 사료에 첨가하는 필수아미노산이다. 특히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인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큰 편이다. 그런데 지난해 중국 경기와 외식 소비가 위축되면서 라이신 1kg 가격이 2022년말 2453원에서 작년 9월말에는 2007원까지 떨어졌다.

대상의 라이신 생산 라인이 있는 군산 공장의 가동률은 같은 기간 82.1%에서 78.6%로 낮아졌다. 라이신 국내 1위 사업자인 CJ제일제당도 지난해 중국 라이신 공장 생산량을 감축했다.

대상은 이번 정정 공시를 내면서 중국 청푸그룹 지분 취득 목적을 당초 ‘중국 내 제조기반 마련을 통한 아미노산 사업 확대’에서 ‘소수 지분투자를 통한 기능성 사료용 아미노산의 공급기지로 활용’으로 바꿨다.

대상 관계자는 “라이신 사업 업황 악화 등 환경 변화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변화를 꾀할 수 밖에 없었다”며 “청푸그룹과는 사료용 아르기닌이나 트립토판 등 기능성 아미노산 사업에서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 철회로 대상의 라이신 등 바이오·소재 사업 확대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대상은 1973년 국내 최초로 라이신 사업을 시작한 ‘원조 사업자’다. 1997년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독일 바스프에 라이신 사업부문을 6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9000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2015년 백광산업이 바스프로부터 사들인 라이신 공장을 1200억원에 다시 인수하며 매각한 지 18년 만에 되찾는 데 성공했다.

대상은 2018년에는 중국 청푸그룹에 라이신 기술을 이전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전략적 사업협력 관계를 맺었다. 당시 두 회사의 라이신 생산량을 연 50만t에서 70만t 수준으로 확대하고 2022년까지 2조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