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철 변호사 "1000조 가상자산, 무법 상황 방치하면 제2의 테라 사태"
“가상자산은 연간 1000조원 이상 거래되는 시장으로 커졌습니다. 더는 무법상태로 방치해선 안 됩니다.”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미국변호사(사진)는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주 변호사는 법조계의 손꼽히는 금융 전문가로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거듭 경신하는 뜨거운 시기에 가상자산 규제 강화를 주장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22년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서 가상자산 담당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금융위원회 디지털자산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와 한국은행 머니&뱅킹 미래포럼에서도 가상자산 관련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 변호사는 “은행·증권 계좌 등이 없어도 블록체인 기술로 금융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디파이 코인’과 보유량 중 일부를 지분으로 고정해 가격 변동과 관계없이 예치 기간에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스테이킹 코인’ 대부분이 가상자산이란 이유로 전혀 규제받지 않고 있다”며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미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봐 규제 언급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규제 없이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정책만 계속 나온다면 제2의 테라·루나 폭락사태가 또 한 번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 발행된 테라와 루나는 한때 시가총액이 51조원대로 뛰면서 세계 8위(시총 기준) 코인에 올랐지만 2022년 5월 72시간 만에 가격이 99.9% 폭락해 투자자들이 대거 손실을 봤다.

그는 서둘러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분류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변호사는 “금융당국이 STO(토큰증권)는 증권으로 분류해 별도 규제를 마련하고 있지만 현재 거래되는 가상자산 중에선 여전히 증권인지 대출상품인지 판단조차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숱하다”며 “상품 성격조차 규정되지 않다 보니 불법행위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는 체계가 제대로 구축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테라·루나만 해도 금융당국이 발 빠르게 금융상품으로 규정해 규제했다면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관해선 “시세조종과 내부자 거래 등 불공정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담았다는 점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범죄 예방을 위한 내용을 시급히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변호사는 “주가조작 사건조차 부당이익 환수와 투자자 피해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데 가상자산 시장은 범죄 예방을 위한 규정조차 없다”며 “금융당국이 임의로 거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고 거래소에 자료를 요청해도 받는 데까지 하세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방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처벌 사례마저 미미하다 보니 누구나 쉽게 범죄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처럼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발행·상장·거래를 허용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주 변호사는 “ETF는 누구나 쉽게 거래할 수 있지만 발행과 유통은 증권사만 할 수 있다”며 “금융 전문가들이 각종 헤지(위험 회피) 전략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가 쉬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김진성/사진=이솔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