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콜레기움 보칼레·무지쿰 서울 공연…'합창대부' 故나영수 교수 추모
바흐 '요한 수난곡'으로 수난절의 감동을 이어가다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흐의 '요한 수난곡' 중 파울 게르하르트가 작사한 코랄 부분이 원어와 우리말로 울려 퍼졌다.

김선아의 지휘로 지난 2일 별세한 한국 합창음악 대부 고(故) 나영수 교수를 추모하는 연주였다.

이날은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연주단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요한 수난곡'을 무대에 올린 날이었다.

김선아와 솔리스트, 악단과 합창단은 이날 공연이 지난 세대 선구자들이 일군 문화의 터전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선아와 모든 연주자는 수난절의 의의에 걸맞게 앞서 희생과 노고를 기울인 선구자 세대에게 공을 돌렸다.

훈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지난해 수난절 기간에 연주한 바흐 '마태 수난곡'으로 최근 제2회 서울예술상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고음악 분야에서 꾸준히 연주 수준의 향상과 관객 저변 확대를 이뤄내며 성장한 모범사례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날 공연은 바흐의 '요한 수난곡' 초연 300주년 기념이라는 의의도 겸하고 있었다.

'요한 수난곡'은 바흐 최대의 대작 '마태 수난곡'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보다 드라마틱하다.

'마태 수난곡'이 긴 호흡으로 장중하게 써 내려가는 수난사라면 '요한 수난곡'은 다채로운 군중 합창, 강렬한 연주효과, 중단없이 장면을 이어 나가는 역동적 진행 등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공연에서는 이런 '요한 수난곡'의 개성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바흐 '요한 수난곡'으로 수난절의 감동을 이어가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전반적으로 훌륭한 합창을 들려줬다.

특히 수난곡에서 청중의 묵상을 다루는 코랄 파트를 정갈하고도 경건하게 노래했다.

성부의 균형감, 깨끗한 화성과 선율 라인이 인상적이었고, 전곡에 등장하는 여러 코랄 선율을 가사의 내용에 맞게 결을 달리하며 표현한 것 또한 훌륭했다.

한편 수난곡의 '성극'에 참여하는 군중으로서의 합창에서는 기민하게 앙상블을 이루는 리듬적인 명민함은 훌륭했지만, 극적인 강렬함의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사실 '요한 수난곡'은 리듬적 측면에서 독일어 낭송 자체에 큰 영향을 받는다.

독일어의 강음이 충분히 강해야 하고 강약의 교대가 분명하고도 규칙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만 언어의 추동력을 이어받아 음악적인 긴장감이 형성되고, 그다음 이어지거나 겹치는 악구에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특히 첫 개시 합창에는 그러한 특성이 가장 확고하게 드러나 있는데, 여기서도 선율의 조형이나 균형의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던 데 반해, 언어 낭송적 측면에서의 에너지가 부족했다.

아마도 공명이 더 좋은 교회나 성당이었다면 문제가 덜했을 것이지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라는 넓은 공간에서는 좀 더 강한 추동력이 필요했다.

바흐 '요한 수난곡'으로 수난절의 감동을 이어가다
콜레기움 무지쿰도 넓고 울림이 더디게 '되돌아오는' 공간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기악 역시 좀 더 독일어 율격을 의식하며 반복 악구를 보다 단단하게 연주했다면 전체 악상이 보다 선명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특히 목관의 경우 긴 음을 연주할 때 악구의 끝에서 피치가 살짝 쳐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이 역시 공간의 문제에서 비롯된 듯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백승록 악장이 이끄는 현악기군의 응집력은 훌륭했고, 계속저음 악기들은 장면 전환 부분에서 전반적인 호흡을 조정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다.

그 밖에도 우아한 비올라 다감바 독주, 바흐가 즐겨 사용했던 오보에 다 카치아 등도 인상적이었다.

솔리스트들 가운데서는 역시 복음사가 홍민섭이 발군의 기량을 보여줬다.

홍민섭의 장점은 예수 수난을 보고하는 복음사가의 서사적 역할에 충실하되 때에 따라 서정적인 몰입과 드라마적인 고조를 모두 탁월하게 해낸다는 점이다.

특히 베드로의 부인 장면, 예수 죽음 장면 등의 가창은 서사, 서정, 드라마가 모두 녹아 있는 훌륭한 해석이었다.

소프라노 윤지, 테너 김효종, 베이스 김이삭 등 그동안 김선아와 호흡을 자주 맞췄던 이들도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그중에서 윤지가 부른 두 곡의 아리아는 명료한 발성, 표현력, 색채 등에서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카운터테너 정민호는 움직임이 많은 악상에서도 안정된 호흡과 풍부한 표현력을 들려줬고, 베이스 우경식 또한 연극적 배역인 예수에서나 예수 죽음 이후의 아리아에서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선보였다.

바흐 '요한 수난곡'으로 수난절의 감동을 이어가다
김선아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악상을 매만지지만, 전곡의 구조, 반복되는 모티브 등을 드러내는 데는 일관성을 확고하게 유지한다.

그는 악단의 마음을 얻어 무대를 장악하는데 실은 이것이 더 높은 차원의 카리스마다.

자기 과시 대신 고요한 영성을 전파하는 그는 카리스마가 은총에서 나온 말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영성과 성실성 앞에 우리 고음악이 직면해 있는 여러 실제적 한계는 차라리 작아 보인다.

애쓰고 궁리하면 다다를 것이다.

한때 바흐 수난곡의 고음악 연주 자체가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제 우리는 매년 '우리의 바흐'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