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투어’ 하면 으레 포도밭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포도가 생산되는 밭을 거닐며 싱싱하게 자라는 과실을 엿보고,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토질과 지형을 둘러보며 ‘떼루아(terroir)’의 의미를 실감하는 것. 갓 병입을 마친 와인을 마셔보는 시음은 투어의 꽃일 터이다. 그러니 와인 투어의 목적지를 홍콩이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이들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이 작은 지역에는 포도밭은커녕 와인 생산자조차 없으니. 그렇지만 아시아에서 와인을 마시기 좋은 곳을 이야기할 때 홍콩은 첫손 안에 꼽힌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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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와인 허브

홍콩은 항공과 항만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장점으로 오래전부터 미식의 도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 서양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덕분에 일찍부터 와인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자타공인 ‘아시아의 와인 허브’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2008년의 주세 개편이 결정적이었다.
홍콩은 서양식 식문화가 녹아든 덕분에 일찌감치 와인 문화가 발달했다./사진=홍콩관광청
홍콩은 서양식 식문화가 녹아든 덕분에 일찌감치 와인 문화가 발달했다./사진=홍콩관광청
홍콩 정부가 알코올 도수 30% 미만 주류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때로는 생산지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 전 세계 와인업계 종사자와 애호가들이 홍콩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아콜레이드 와인, 컨스텔레이션 브랜드 등 세계적인 와인 기업이 앞다투어 홍콩에 아시아 지사를 설립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된 지니 조 리,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 등 내로라하는 와인 전문가들도 홍콩에 정착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홍콩의 한 해 와인 수입액은 1조7000억 원으로 이는 한국의 수입액을 2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특이한 점이라면 상당량의 와인이 해외로 재수출된다는 것이다. 2017년에는 무려 37%의 와인이 재수출되었다. 홍콩으로 들어온 와인이 다른 아시아 국가로 유통되는 덕분이다. 그야말로 ‘아시아의 와인 허브’임을 증명한 셈이다.

각종 와인 비즈니스가 성황을 이루면서 와인 경매 사업도 드라마틱하게 성장했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경매 회사가 희귀한 초고가의 와인을 경매 시장에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홍콩은 경매의 중심인 런던과 뉴욕을 단기간에 따라잡고, 세계 와인 시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국면이 진정되는 대로 홍콩이 와인 경매 시장에서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고급 와인이 홍콩으로 몰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큰손’ 중국 소비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 중국 시장에서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소비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구매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덕분에 중국을 겨냥하는 와인 제조업체들은 일차 관문으로 홍콩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생산자의 와인, 올드 빈티지의 와인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와인 쇼핑의 천국

그렇다면 홍콩에서는 어떤 와인을 사는 것이 좋을까? 정답은 프리미엄급의 고품질 와인이다. 가격이 높더라도 한국에서 같은 와인을 구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 메리트가 높기 때문이다. 중저가의 데일리 와인을 노린다면 말할 것도 없다. 홍콩에서는 매일 ‘와인장터’에 버금가는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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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거리마다 작은 와인숍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숍마다 주로 취급하는 와인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숍 마스터와 이야기를 나누며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추천받는 것도 방법이다. 특정 국가와 지역의 와인만을 취급하는 등 콘셉트가 확실한 가게가 많기 때문에 특정 빈티지의 와인이나 생산량이 적은 희귀한 와인을 구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일정이 짧아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면 한국에서부터 쇼핑을 시작하자. 많은 와인숍이 온라인 판매를 제공하고 있어 떠나기 전 주문하면 호텔로 배송받을 수 있다. 실시간으로 와인의 재고를 확인할 수 있고 온라인 전용 할인과 무료 배송 혜택도 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와인이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전부 살 수는 없는 일. 현재 한국 입국 시 주류의 관세 면제 범위는 1인당 ‘2리터, 2병, 미화 400달러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이를 초과할 경우 병마다 추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이 뛰어난 와인이라면 세금을 포함하더라도 충분히 메리트 있는 가격이다. 무거운 짐이 부담된다면 국제 특송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와인은 보관 온도가 중요한데, 홍콩 EMS를 통하면 빠르면 하루 만에도 배송받을 수 있으니 편리하고 와인도 보호할 수 있는 좋은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와인 페스티벌

전 세계 미식가들의 발걸음은 매년 가을 홍콩으로 향한다. 아시아 최대 와인 미식 축제인 ‘홍콩 와인&다인 페스티벌’ 때문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축제는 홍콩 하버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다양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자리다. 특별관에서는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인, 이탈리아의 슈퍼 투스칸 등 고가의 와인을 직접 맛보고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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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기간에는 온라인 마스터 글래스, 버추얼 투어 등 언택트 프로그램으로 진행을 이어가기도 했다. 올가을에는 이전처럼 전 세계의 와인업계 관계자들과 소비자가 다시 한 번 모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류업계 종사자들이 주목할 만한 행사도 이어진다. 매년 1월에는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페어’가 열린다. 와인은 물론이고 맥주, 증류주 등 다양한 주류를 모두 아우르는 자리로, 글로벌 바이어들이 총출동하는 자리. 2023년 페어에서는 전 세계 50여 개 지역에서 1075개 주류 회사가 참여해 방대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홍콩의 야경을 보며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사진=홍콩관광청
홍콩의 야경을 보며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사진=홍콩관광청

홍콩의 보석 같은 와인숍 4

1. 소더비 와인숍 Sotheby’s Wine Shop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에서 운영하는 숍으로, 와인 경매부터 판매까지 모두 이곳에서 진행한다. 숍 와인 매대는 전문가의 까다로운 셀렉션으로 꾸려지기로 유명하다. 인지도 높은 스타 생산자의 와인은 물론이고, 뛰어난 품질을 갖춘 숨어 있는 와인을 발굴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렇다고 고가의 와인만 갖춘 것은 아니다. 가성비가 뛰어난 데일리 와인인 ‘소더비 와인 라인’도 있으니 부담 없이 들러볼 만하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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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인 와인 익스피어리언스 Fine Wine Experience
‘홍콩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프리미엄 와인 셀렉션’을 자랑하는 곳. 와인숍과 와인바, 프렌치 레스토랑 ‘바타드’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구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와인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있다. 덕분에 와인을 목적으로 홍콩을 찾는 이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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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인 레어 홈 홍콩 FINE+RARE HOME HONG KONG
이름처럼 뛰어난 품질(fine)의 희귀한(rare) 와인을 만날 수 있는 곳. 와인에 대한 식견이 뛰어난 전문가들이 상담을 통해 고객 취향에 맞춘 최적의 와인을 골라낸다. 매장 지하 셀러에만 1000여 종의 와인을 갖추고 있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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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리미에 크뤼 Premier Cru
‘프랑스 와인 라이브러리’를 자부하는 곳으로,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론과 부르고뉴 지역의 와인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프랑스 소믈리에 출신인 크리스토프 보노 대표가 엄선한 와인을 도서관의 책처럼 진열해 두었다. 데일리 와인 테이스팅, 음식 페어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방문해볼 만하다.
사진=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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