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규석 큐리에이터 대표. 이우상 기자
백규석 큐리에이터 대표. 이우상 기자
“통상 신약개발 성공 확률을 10% 내외로 보는데, 이젠 틀린 얘기입니다. 인체 장기의 특징을 목적에 맞게 잘 재현한 장기모사칩(MPS)이 있다면 100%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장기모사칩 플랫폼으로 신약에 나선 큐리에이터의 백규석 대표는 6일 이같이 말했다. 백 대표는 자신감의 근거로 미국 대형 제약사 버텍스 파마슈티컬스가 내놓은 최신 임상 결과를 들었다. 백 대표는 “비임상 단계에서 장기모사칩을 활용해 개발한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 후보물질 6종의 임상개발이 모두 성공적으로 종료됐으며, 그 예시 중 하나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카스게비’”라며 “장기모사칩이 신약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고 강조했다. 버텍스는 다국적 제약사 중 장기모사칩 내재화에 가장 선도적인 곳으로 꼽힌다.

백 대표는 2019년 큐리에이터에 합류하기 전까지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에서 장기모사칩을 개발한 핵심 멤버였다. 카스게비의 효능을 평가하기 위한 장기모사칩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희소 유전병인 겸형 적혈구 빈혈증은 질병을 재현한 동물모델이 없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앞서 유효성을 평가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며 “실제 모세혈관을 모사한 구조를 장기모사칩으로 만들고, 카스게비로 치료한 적혈구를 흘려보내 혈관폐색이 일어나는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적혈구가 혈관을 틀어막아 발생하는 혈관폐색은 겸형 적혈구 빈혈증 환자들의 삶의 질을 낮출뿐 아니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주요 증상 중 하나다. FDA 허가 근거가 된 카스게비 임상의 평가지표 또한 혈관폐색의 관해였다.

백 대표는 큐리에이터의 강점으로 약물 유효성 평가에 적합하게끔 신체 조직을 모사하는 장기모사칩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과, 장기모사칩을 활용해 빠르게 후보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스크리닝 실력을 꼽았다. 그는 “일주일이면 2000개 정도 물질을 스크리닝할 수 있고, 경쟁사 대비 30~40배 더 빠른 속도”라고 강조했다.

큐리에이터는 올해 내로 위암 또는 대장암 장기모사칩 개발을 마치고 신약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큐리에이터가 개발한 장기모사칩의 완성도를 검증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여러 고형암 중 위암과 대장암을 ‘콕 찝어’ 정조준한 까닭은 의료적 미충족 수요가 크며 장기모사칩 개발의 진척도가 높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암조직에 혈관이 촘촘히 형성돼 있어 성장과 전이가 빠른 난치성 암을 장기모사칩으로 구현한 뒤 수십 수백 종류의 저분자화합물을 스크리닝하는 방법으로 최적화된 후보물질을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겸형 적혈구 빈혈증처럼 동물 모델이 없는 질환을 모사하는 장기모사칩도 개발하고 있다. 백 대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3차원 구조로 눈의 황반 구조를 재현하고 황반변성의 원인이 되는 드루젠의 형성 과정을 보였다”며 “특히 동물모델이 없는 건성 황반변성 치료제를 개발하는 업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를 포함해 버텍스 출신 C레벨이 4명이며, 이달 중 5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큐리에이터는 서울대와 국내 벤처캐피털(VC)의 자본으로 2017년 설립된 미국 회사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제약·바이오 뉴스 사이트 <한경 BIO Insight>에 2024년 3월 7일 9시36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