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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물가 급등은 작년 말부터 안정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여전히 3%대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코로나19 이전 저물가 시대로의 귀환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상반기로 전망되던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도 하반기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Fed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 속에 꾸준히 내리던 국내 시장금리 하락 속도도 더뎌졌다. 당분간 금리가 느리게 내리는 ‘중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예금자나 차주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중금리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대출 조이자…금리 오르나

기준금리 인하 전망과 온라인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도입에 발맞춰 앞다퉈 금리를 인하하던 은행들이 다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연초부터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1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3143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3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작년 5월 이후 9개월째 늘고 있다.

비대면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가 은행권 대출 금리를 끌어내리면서 주담대가 불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가계대출 옥죄기가 시작됐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19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0.05~0.2%포인트 인상했고 우리은행도 같은 날 주담대 금리 상·하단을 0.02%포인트씩 올렸다. 앞서 국민은행도 자체 책정하는 주담대 가산금리를 0.23포인트 인상했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의 지표가 되는 은행채 금리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AAA·무보증)의 평균 금리는 작년 10월 26일 연 4.81%에서 지난달 26일 연 3.771%로 2개월 사이 1%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줄어들면서 지난달엔 연 3.8%대를 넘어섰다. 단 변동금리형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예·적금 금리가 떨어지면서 두 달 연속 내려간 3.66%를 기록했다.

○갈아타기 최적 시점 따져야

한국은행이 하반기께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고정형 주담대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준거금리가 은행채인지 코픽스인지에 따라 금리 인하 시점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시장금리를 반영하는 은행채는 기준금리 변동 가능성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기준금리가 실제 내리지 않더라도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면 은행채 금리는 먼저 떨어진다. 따라서 은행채에 연동되는 대출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높을 때 갈아타는 게 대출이자를 아낄 수 있다.

8개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기업 한국씨티 SC제일)이 전달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 금리인 코픽스를 좌우하는 예·적금 금리는 은행채보다 시장금리 반영이 늦은 편이다. 당월 코픽스가 공식 집계되는 기간과 은행의 실제 조달비용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데까지는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코픽스를 기준금리로 쓰는 변동형 주담대와 전세대출은 예·적금 금리가 떨어지는 기준금리 인하 시점까지 기다렸다가 대출을 갈아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적금 ‘막차 수요’…주식시장 이동도

올 들어 은행 예·적금 금리는 기준금리(연 3.5%)와 비슷한 수준까지 내렸지만 오히려 가입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5대 은행의 지난 1월 말 저축성 예·적금 잔액은 909조1061억원으로 한 달 새 13조9472억원 뛰었다. 반면 이자가 연 0.1% 수준에 그치는 요구불예금은 같은 기간 26조360억원 줄어든 590조712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 예·적금 금리가 더 내리기 전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은행 예·적금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보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투자자예탁금은 50조원을 웃돌고 거래대금도 20원대를 회복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판 금액이다. 공모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이 지난달 13일 77조518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올 들어 ‘공모주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로 정해지고 상한가로 마감하는 것) 현상이 발생하는 등 기업공개(IPO) 시장이 회복되면서다. CMA 계좌는 작년 말보다 200만 개 이상 늘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