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공예가는 버려진 도토리·곤충 허물로 '영원한 쓸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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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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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땅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길을 걷다 보면, 육체가 건강해짐은 물론 흐트러진 마음이 정돈된다. 조용하게 사색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몰입했던 문제로부터 빠져나올 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스튜디오 포(Studio foh)’의 작업실은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끝자락에 있다. 북한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형성된 우이동 계곡이 근저이며, 1700년대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벚나무가 이웃이다. 작가는 주로 산책과 여행에서 다양한 식생물을 수집한다. 계곡과 주변 숲길을 걸으며 사시사철마다 다른 날씨와 식생을 유심히 그리고 애정 있게 살핀다.


그렇다고 작가가 자연을 재료나 소재로 쓸 것을 구하는 유용의 대상 혹은 즐김으로만 여기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자연물뿐 아니라 여행을 가서도 시장, 빈티지 가게 등을 들려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한다. 누군가 사용하다 어떤 경로로 매대 위에 올랐을지 모를 빗이나 거울, 머리핀 등을 보며 이름 모를 소유자의 취향이나 삶, 사연 등을 가늠해 보는 것은 세월 묵은 유일한 사물들에서만 얻을 재미다. 깨끗하고 형태 반듯한 새것도 좋지만, 흥미롭지 않다. 묵은 것, 닳은 것, 색이 바란 것, 남이 사용했던 물건들에 관심이 가는 마음은 작가가 산책하며 죽은 나무의 나이테나 생을 다한 곤충이나 허물을 보듬는 마음과 같다.



썩어 사라질 것, 버려진 것들의 표면을 금속으로 덧입히고 솜씨를 부려 새로운 용도, 아름다운 유용으로 부여하는 일은 계절별로 길에 나서 길가에 피어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나뭇잎과 꽃, 돌, 생물에게 말을 걸고 발견하는 모든 것은 ‘걷기’에서 시작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랴. 스스로 좋아해서 하는 일, 나와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는 일, 손재주와 감각을 발휘하여 먹고 사는 소소한 일이다. 그러나 공예가의 일이란 저만 좋은 것이 아니라 타인의 즐거움과 위안, 필요함까지 채워주는 일이니 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일인가. /홍지수 크래프트믹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