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오늘까지 돌아오면 선처"…의사들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중단해야"
수술 축소에 암환자 "수술 일주일 앞두고 취소됐다"
"이제 파국이다"…상급종합병원, 환자 더 줄일 듯
전공의 복귀 움직임 미미…'전임의' 동요는 아직 없어
의사들 수만명 "증원 결사반대"…병원선 응급실 운영도 '파행'(종합)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좀처럼 돌아오지 않으면서 현장의 어려움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현재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들마저 응급 환자를 가려서 받는 실정이며, 수술 축소로 암환자 수술이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3일까지 복귀하는 전공의는 최대한 선처하겠다며 다시금 돌아오라고 강조했지만, 수만 명의 의사들은 서울 여의도에 운집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여 의료계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일부 전공의들이 하나둘 병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지만, 서울시내 대형병원에서는 아직 "체감하기는 힘들다"는 분위기이다.

의사들 수만명 "증원 결사반대"…병원선 응급실 운영도 '파행'(종합)
◇ 대형병원들, 응급실서도 환자 가려 받는다
의료계에 따르면 각 병원은 전공의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한 데 따라 수술과 진료를 최대 50%까지 줄이는 비상진료체계를 지속해서 가동하면서 이들의 복귀와 전임의들의 추가 이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은 아직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이 구체화하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로 전했다.

전공의의 복귀가 요원한 가운데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교수와 전임의 등을 활용해 최대한 가동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환자마저도 부분적으로만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얼굴을 포함해 단순히 피부가 찢기거나 벌어진 열상 환자의 경우 아예 24시간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들은 현 상황이 지속하면 수술과 진료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고, 환자들의 대기 시간도 2∼3배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병원들은 간호사 인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진료 과목별 부족한 인력을 파악하고, 간호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을 내부 논의 중이다.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7일 전공의 이탈로 인한 진료 공백에 대응하고자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조정하는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즉시 시작했다.

시범사업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장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 등에 따라 업무 범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의사들 수만명 "증원 결사반대"…병원선 응급실 운영도 '파행'(종합)
◇ 전공의 안 돌아온 가운데, 전임의 이탈은 '아직'
전임의의 이탈 여부에 대해서는 병원마다 전망이 엇갈린다.

전임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뒤에도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에 대한 연구와 진료를 이어가는 의사들이다.

교수들과 함께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왔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는 200여명 정도인데, 지난달 말 기준으로 예년과 같은 규모로 등록을 마쳤다"며 "아직 뚜렷하게 감지되는 건 없지만 추가 이탈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전임의 수가 소폭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임의 수는 225명, 이달 전임의 수는 215명이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은 내주가 돼봐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들은 전공의처럼 대다수가 빠지진 않겠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병원에서도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대규모 이탈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쌓일 대로 쌓인 업무를 감당하지 못한 채 이미 사직을 결심한 전임의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남아있는 임상 강사와 막내 교수들의 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외과 주니어 교수 1명이 너무 힘들어서 사직하겠다고 한다더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지금 남아있는 전임의로는 어림도 없다"며 "2주 정도 되니까 중환자 관리에, 당직까지 하면서 고생하는 전임의들이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직간접적으로 들린다"고 전했다.

의사들 수만명 "증원 결사반대"…병원선 응급실 운영도 '파행'(종합)
◇ "오늘 돌아오면 선처" vs "의대증원·필수의료정책 모두 중단해야"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이 지나면서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본격적인 행정처분과 사법절차 개시가 임박한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늘까지 복귀하는 전공의들에 대해 정부에서는 최대한 선처할 예정"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도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서 엄중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서 각종 행정처분, 그다음에 필요하다면 사법적 처벌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을 확실히 하고자 '명령 공시'까지 마쳤고, 4일부터는 전공의 복귀 현황을 파악해 처분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가 원칙에 따른 대응을 다시금 강조한 이날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 여의대로 인근에서 '의대 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집회는 경찰 추산 1만2천명, 주최 측인 대한의사협회 추산 4만명이 참석했다.

의협 비대위는 궐기대회에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라고 요구했다.

의협 궐기대회에 앞서 녹색정의당은 의사들의 현장 복귀를 촉구하고,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국민 참여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에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우리랑 정부 간 상의해야 하는데 왜 시민사회가 참여하느냐"며 "우리한테 환자들에게 돌아가라고 할 게 아니라, 정부에게 고집을 꺾으라고 말해야 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이날 울산대와 제주대 의대 학생들은 각각 총장들에게 교육부에 제출해야 하는 의대 증원 재수요조사에 참여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의사들 수만명 "증원 결사반대"…병원선 응급실 운영도 '파행'(종합)
◇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진단도…환자들만 '고통'
의료계에서는 정부와 전공의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이제 파국이고, 회복 불능 상황이 됐다"며 "각 수련병원은 지금의 인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아예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환자 중심 진료체계를 구축하고, PA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해서 일반 입원환자 진료에 차질 없게 해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은 환자를 더 줄여야 하고, (환자들은) 불안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큰 병원 아닌)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고 봤다.

이 사태가 종료된 후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예측도 나온다.

의사를 향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정부의 강도 높은 발언 등을 겪은 전공의들이 아예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지금 전공의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 파업하는 게 아니어서 정부가 원점으로 돌려도 상당수가 안 돌아올 수 있다"며 "이미 뇌관을 건드린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고, 선배 의사들이 거리로 나간 사이 환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내몰리고 있다.

한 갑상선암 환자는 암 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술 일주일을 앞두고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취소를 통보받았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이 없다더라"며 "기약이 없어서 이게 그동안 더 커지거나 퍼질까 봐 걱정되는데 괜찮겠느냐"고 불안을 호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