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파' 자민당 에드 데이비 대표…"생계비 급등 민원 많아"
정책 민원 절반은 가자 전쟁·동물 복지…어린이 편지에도 일일이 답장
英 의원 지역 사무실 가보니…배낭 메고 와서 주민 정례 면담
민주주의 본산지로 꼽히는 영국의 정치인들은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런던 외곽 지역 사무실에서 만난 자유민주당 대표 에드 데이비 의원은 집에서 주민 2명과 화상으로 개별 면담을 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한인타운인 뉴몰든을 포함하는 '킹스턴과 서비튼' 지역구의 하원의원인 데이비 대표는 비가 자주 오는 영국 날씨에 맞는 외투를 정장 위에 걸치고 서류가 가득 든 배낭을 멘 차림이었다.

약 1년 전 만났을 때와 다른 점은 목도리가 없다는 것 뿐이었다.

英 의원 지역 사무실 가보니…배낭 메고 와서 주민 정례 면담
그는 이날 면담 주제는 민원인의 자녀 학교 문제와 태양광 패널 관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지역 주민 개별 면담은 '서저리'(surgery)라고 불리는데, 영국 의원들이 주민과 개별적 관계를 맺는 주요한 활동이다.

데이비 의원은 이러한 민원 청취 면담을 평균 주 3회 진행하며, 보통은 직접 만나지만 화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엔 주민이 일정 공지를 보고 예고 없이 찾아가도 의원을 만날 수 있었지만, 최근엔 예약제로 운영된다.

의원들은 '민원 담당자'(case worker)라고 불리는 보좌진의 안건 검토를 토대로 면담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2021년 데이비드 에이머스 의원이 면담 중에 피습, 살해된 사건으로 인한 큰 변화다.

예약제로 변하고 의원들이 주민을 만날 때 안전을 신경 쓰게 되면서 영국 민주주의가 축소된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로 이러한 민원 청취 면담은 영국 정치에서 의미가 크다.

英 의원 지역 사무실 가보니…배낭 메고 와서 주민 정례 면담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데이비 의원의 사무실은 외부가 당 상징 색깔인 노란색이어서 눈에 띄었고 자유민주당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6선인 데이비 의원 이름은 창문에 작게 적혀있고, 사진은 A4 크기 안내문 귀퉁이에 붙은 것이 전부였다.

영국은 정치인들이 큰 벽보나 현수막을 사용할 수 없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유권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낼 홍보물이 잔뜩 쌓여있었다.

면담을 하는 방은 4인용 탁자가 들어가면 꽉 차는 크기로, 인터뷰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英 의원 지역 사무실 가보니…배낭 메고 와서 주민 정례 면담
데이비 의원은 면담 외에 집집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캔버싱'(Canvassing)이나 각종 주민 모임 등에서 더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학교, 경찰, 병원, 대중교통 등 주요 기관과 자영업 단체들과도 만나 지역 상황을 파악한다.

데이비 의원은 "최근 주거비 등 생계비 상승에 따른 어려움, 국민보건서비스(NHS) 이용 불편 등의 호소가 많다"며 "주거 여건이 너무 열악하거나 집에서 쫓겨나 노숙인이 되는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은 정치인을 찾는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을 포함해 자치구(카운슬) 관할 문제는 구의원(카운슬러)에게 전달하지만 문제가 복잡하고 심각할 경우엔 지원에 나선다.

그는 "장애가 있거나 영어로 소통이 원활치 않을 경우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원의원과 구의원의 업무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에 일부 의원은 웹사이트에 생활 민원 등은 구의원에게 연락하라고 안내해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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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책에 관한 의견은 주로 이메일로 들어온다.

데이비 의원의 프랜 코인 비서실장은 "작년 10월 하마스 공격 후 가자 전쟁에 관한 이메일이 약 3천건 들어왔다"며 "현재 비율로 보면 가자 전쟁이 약 25∼30%, 동물 복지가 20%, 환경이 20%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에 데이비 의원은 지난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직접 상황을 보고 오기도 했다.

동물 복지는 개물림 사고 증가로 인해 '아메리칸 불리 XL'을 금지 견으로 지정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 오락을 위한 야생동물 사냥 반대, 양식 물고기 복지 촉구 등이 주를 이룬다.

코인 실장은 "시민단체 등을 통해 같은 내용을 보내더라도 개인 의견을 추가했다면 그에 관해 따로 답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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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하원의원에게 편지쓰기를 하는 등 어린이들도 종종 의견을 담은 손 편지를 보내온다.

데이비 의원은 아이들의 편지 일일이 서명해서 답장을 보낸다고 코인 실장은 전했다.

데이비 의원의 한국계 보좌관인 임혜정씨는 "영국에선 지역 하원의원에게 연락하면 뭔가 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 같다"며 "풀뿌리 민주주의 전통의 뿌리가 깊은 데다가 소선거구제여서 의원들이 지역에 더 밀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