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네.
그의 집 마을에 있어도.
그는 모를 것이네, 나 여기 멈춰 서
그의 숲에 눈 쌓이는 것 보고 있음을.

내 작은 말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틀림없네.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이때
근처에 농가 하나 없는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춰 서 있음을.

무슨 착오가 있는지 묻기라도 하듯
그는 마구를 흔들어 종을 울리네.
달리 들려오는 건 부드러운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 내리는 소리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네.
하지만 나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의 길이 있네.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의 길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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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를 읽으면서 ‘지켜야 할 약속’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합니다. 다음 대화를 한번 볼까요.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가장 적은 것은?”
“그것도 사람이다.”

일본 장수 구로다 조이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고받은 말입니다. 대화 속의 ‘사람’을 ‘인재’로 바꿔놓으면 금방 통하지요. 이 대화는 침몰 직전의 아사히 맥주를 회생시킨 히구치 히로타로가 자주 인용한 대목입니다.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기적의 전문경영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입니다.

모두가 “일손은 충분한데 인재가 없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는 망설입니다. 일반 직원들도 “나는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푸념하죠. 이럴 땐 전 세계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한다는 책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엘버트 허바드 지음)를 떠올려 봅니다.

원래는 140년 전에 나온 책이죠.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1억 부 가까이 팔렸답니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 병사들이 군용배낭에 한 권씩 넣고 다녔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지요.

더 재미있는 건 일왕까지 이 책을 모든 ‘황국신민’에게 보급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이 저마다 지니고 있길래 무슨 내용인가 하고 번역했다가 책 속의 메시지에 반했다는군요. 냉전 시대의 미국과 러시아 양쪽에서 나란히 읽혔던 아이러니의 주인공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경영자들이 인적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직장인들이 자신의 직무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알려주는 책입니다. 한 세기 이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터의 포연 속에서, 때론 작업장의 먼지 속에서 꾸준히 읽혀온 책치고는 참 얇습니다. 목차와 그림을 포함해도 94쪽밖에 안 되지요.
인재는 가까이 있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독립시키기 위해 전쟁을 치를 때의 실화입니다. 제목 속의 가르시아 장군은 당시 쿠바의 반군 지도자였죠. 산채를 옮겨 다니는 그의 근거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그에게 비밀 편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임무를 맡게 된 로완 중위는 대통령의 편지를 품에 넣자마자 지체없이 길을 떠났지요.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로완이 대통령의 편지를 받고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지 않았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임무가 주어졌을 때의 마음가짐, 스스로 문제를 풀고 행동으로 옮기는 성실함과 책임감에 주목한 것이지요. 아무리 기술과 시스템이 발전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자세니까요.

저자는 “주어진 임무에 대한 충성심은 일을 처리하는 유능함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적었습니다. 자신이 ‘저녁 밥통을 지고 다니며 하루하루 노임을 위해 일했고 한때 사람들을 부린 적도 있어 양쪽 모두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그는 누가 지켜보든 아니든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사람에게 애정을 느낀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든 경영자는 가르시아 장군에게 편지를 전달할 인재를 찾고 있지요. 한밤중 쿠바 해안에 닿아 정글 속으로 사라진 로완 중위. 가르시아 장군을 찾아 적군이 들끓는 내륙을 가로지른 뒤 무사히 편지를 전하고 섬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오기까지 그는 자신의 모든 장점을 활용했습니다.

그런 군인에게 훈장이 주어지듯 성실한 사람에게 합당한 과실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는 죽고 없지만, 우리 시대의 수많은 로완 중위가 가르시아 장군에게 전할 편지를 품고 정글 속으로 들어갑니다. 뛰어난 지도자와 훌륭한 조직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눈빛으로 말하는 매킨리 대통령’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아는 로완 중위’일 것입니다. 인재는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