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 뮤지컬 오디션에 대한 내용들을 담았으니 이번 연재는 오디션에 합격한 이후 공연 준비 과정을 담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계약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디션에 통과한 배우들은 제작사와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이 배우에겐 즐겁고도 가장 어려운 순간이다. 제작사는 정해져 있는 제작비를 가지고 계약해야 하니 출연료와 부대비용을 최대한 아끼려 할 것이고, 배우는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니 상호 간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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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출연료인데, 출연료 책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연 한 회당 출연료를 정해 총 몇 회를 공연할 것인가로 책정하는 경우가 있고, 출연 회차와 상관없이 공연 전체에 대한 출연료를 책정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더블, 트리플을 넘어 쿼터블 이상의 배우가 한 역할을 맡는 요즘 뮤지컬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선택되는 방식이다. 회당 출연료는 해당 공연의 티켓 가격, 객석 수, 출연 배우의 수, 해당 배우의 공연 회차, 경력 등을 고려해 책정되고 배우와 제작사가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보통은 제작사에서 금액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자의 경우는 더블이나 트리플이 아닌 원 캐스트일 경우 선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전자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공연 기간 중 총 몇 회의 공연을 하는 지를 명시하고 추가 회차가 생기는 경우 그에 따른 회당 출연료가 추가로 책정되어 지급된다.

지방 공연에 대해서도 계약서에 명시되는데, 제시되는 조건마다 다르지만, 서울 공연과 동일한 회당 출연료를 받거나 지방인 점을 가만해서 50% 정도 인상된 출연료를 받기도 한다. 교통과 숙박은 제작사에서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연료 지급은 계약서 작성 후 수일 이내에 1차 계약금이 지급되고 나머지 금액은 공연 기간에 따라 공연 중에 2~4회 정도로 나누어 지급된다. 마지막 지급은 공연 후 한 달 이내에 지급되는데, 배우의 출연 회차가 여러 가지 이유로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므로 이를 정산하여 최종 금액이 지급된다.

연습기간에 식사제공을 제작사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연습 시간에 따라 식사 제공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연습 기간에도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 제작사도 있고, 공연 기간에도 식사를 제공하는 제작사도 있다. 먹는 문제는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이니 잘 살펴볼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신설되는 조항에는 공연 관련된 내용을 개인 SNS에 올리지 않는다는 조항도 들어가는 추세이다. 몇몇 공연이 배우들이 올린 SNS로 인해 관객들에게 항의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자 만들어진 조항이다. 배우들이 고민 없이 올린 SNS의 글과 사진이 논란이 되면서 공연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생기자 아예 계약서에 명시해 버린 것이다. 사실 이 조항이 있어도 개인 SNS 활동을 막기가 어렵긴 하지만 배우들이 조금 더 신중하게 SNS 활동을 하게 만드는 조항이기도 하다.

배우가 제작사에서 진행하는 공연 홍보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당연히 홍보 관련해서 요청이 올 때 참여 여부를 묻지만, 배우가 특별히 원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계약서에 미리 명시하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OST나 DVD 제작을 준비하는 공연이라면 제작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있을 텐데, 제작 참여를 원치 않는다면 계약 전에 제작사에 미리 공지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총출연료의 일부를 예술인 고용보험에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늘 불안전한 고용 상태에 있는 예술인들에게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동료 배우들 중에 보험 혜택을 누리는 배우들이 생기면서 보험료는 납부하면서도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배우들에게 개인적으로도 알려주고 있다. 예술인에 대한 다양한 복지 정책이 마련되어 보다 안정된 생활 속에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호 계약 위반에 대한 내용들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제작사와 배우 각각의 의무 사항과 이를 어길 시에 보상에 관련된 내용을 잘 살펴서 의문점이 있는 내용은 계약 체결 시에 충분한 설명을 들어야 하며, 명문화해야 하는 내용이 있다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걸로 넘어가는 것은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본적인 계약서 내용이 표준 계약서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문제는 제작사가 출연료를 미지급하는 경우에 생긴다. 아마도 필자 정도의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라면 출연료 미지급을 당한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공연이 성공하지 못하면 출연료를 미지급하고 다음 공연 투자를 이용해 카드 돌려막기식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제작사들도 있다. 또한 출연료 미지급 후에 파산신청을 한 후, 대리 대표를 이름만 올려놓고 뒤에서 다시 공연 제작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들은 을의 입장에 있기에 출연료 지급 소송을 하기도 어렵고, 하더라고 법정 싸움에서 지는 경우도 있다. 출연료 미지급에 대한 법적 조치를 위해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속사가 있는 배우들은 소속사에서 제작사와 계약체결을 하므로 배우가 직접 계약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소속사가 없는 경우에는 배우가 직접 제작사와 계약을 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는다. 가장 중요한 출연료 문제부터 스케줄 등의 다양한 제반 사항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직접 계약하러 갈 때 늘 좋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으로 돌아오던 것이 생각난다. 직장인들도 연봉협상이 어려운데 배우들은 매 번 계약 때마다 임금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이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잘 소통한다면 안 될 일이 없다. 무대가 관객과 소통하는 장이듯 배우와 제작사가 잘 소통한다면 좋은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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