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의료진 "전공의가 하던 일 떠맡아 피로…이제 밤샘 익숙"
열흘째 지속되는 의료 공백에 환자·보호자도 "빨리 복귀하길"
[르포] 전공의 복귀시한 마지막날…빅5선 '안 돌아올라' 불안
정부가 집단행동에 돌입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 마지막 날인 29일 오전.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에서는 아직 전공의들의 대거 복귀 움직임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전문의는 전공의들이 복귀했는지 묻자 "잘 모르겠다.

전문의들끼리 잘 돌아가며 버텨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엘리베이터에서 전공의 복귀 움직임을 묻는 직원에게 "그분들이 연락을 안 받으시니까 모르겠다"면서도 "3월에 올지 안 올지 오늘 중에 결정되는데 분위기로 봐서는 안 오실 것 같다"고 답했다.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한 전문의도 전공의가 많이 복귀했는지 묻자 "크게 변한 것은 없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강남구 삼성서울병원과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전공의들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대신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서 유독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교수와 전문의들만 눈에 띄었다.

병원에 남아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의료진들은 전문의 집단사직 사태가 열흘째 지속되는 데 피로감을 호소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전공의 복귀 상황을 묻자 "저도 전공의 선생님들 연락이 안 돼서 모르겠다"며 웃고는 "이제 밤샘은 익숙하다.

전공의가 하던 일 전부 그대로 하고 있는데 많이 힘들다"며 자리를 떴다.

세브란스병원 임상병리학과 한 전문의도 "전공의들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아서 업무에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전문의가 "나중에 나 지치면 고생 좀 해줘. 그전까진 내가 해볼 테니까"라며 허허 웃자 전공의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 전문의는 기자에게 "전공의들은 다 나갔고 (전공의) 4년 차 끝나거나 3년 차 끝나는 사람들, 펠로들이 오늘까지 (계약) 기한이다.

오늘 6시 이후로 다 나가면 교수들만 있지 않겠느냐"며 "오늘 밤부터 계속 당직을 서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르포] 전공의 복귀시한 마지막날…빅5선 '안 돌아올라' 불안
환자와 보호자들은 자칫 남은 의료진의 업무 과부하로 치료에 차질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전공의들이 하루라도 빨리 복귀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보호자 조모(69)씨는 "병원이 텅 빈 것 같다.

아내가 수술했는데 중간중간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고 의사 선생님 한 명이 와서 '잘 됐다'는 얘기만 했다"며 "궁금한 점도 많은데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불안하다"고 했다.

암 병동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난리니 착잡하다"며 "못 배운 사람도 상도를 아는데 공부 좀 했다고 이래도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삼성서울병원 본관 중환자실 앞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교수님들이 집에도 못 가시고 중환자실에서 밤새 대기하던데 쓰러지실까 봐 불안불안하다"며 "환자 앞에서 티는 안 내지만 보기만 해도 피곤해 보이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걱정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주부터는 전공의들 없이 교수님이랑 간호사만 회진을 보는데 일반 병실로 올라가도 응급 상황이 생길 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보호자들은 의료 공백을 우려하며 서로 전공의 복귀 조짐이 보이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소아암 환아의 보호자 40대 김모 씨는 "(아이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교수님과 간호사들이 많이 힘들어 보여서 '힘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사태가 길어지면 업무 분담이 안 되고 과부하로 (의료가) 붕괴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나 보호자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인데 하루빨리 전공의들이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경남 창원에서 올라와 지난해 10월부터 난소암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박모(69)씨는 "항암 치료를 제때 받아야 하는데 항상 예정일보다 열흘 정도씩 늦춰지는 걸 보면 의료진이 부족한 것 같다"며 "그런데도 사람 생명을 볼모로 파업을 하는 게 환자 입장에서 너무 화가 난다"고 전했다.

이들 병원은 전공의 복귀 시한이 다가오자 취재진을 병동 밖으로 내쫓는 등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사직서를 낸 전공의 중 294명이 지난 27일 밤사이 복귀했다고 이날 밝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8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전공의의 72.8%인 9천76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이는 27일 73.1%보다 소폭 내린 수치로 보건복지부는 "모수에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이탈자 비율이 이틀째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