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꽃에 빠진 화가 김성윤, 프리즈LA 2시간 만에 완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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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정물 시리즈 'Arrangement'로 화제
54년 역사 갤러리현대 최초 30대 작가 단독부스
그림 속 소재인 유의정 도예가 작품과 함께 전시
54년 역사 갤러리현대 최초 30대 작가 단독부스
그림 속 소재인 유의정 도예가 작품과 함께 전시
전 세계 갤러리들이 컬렉터들을 매혹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아트페어. 지난 달 29일부터 나흘 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공항에서 열린 '프리즈LA'에선 30대의 국내 작가 한 명이 이변을 일으켰다. '꽃 정물' 20여 점을 아트페어 시작 2시간 만에 모두 매진시킨 것. 주요 작품 3점은 2분도 안돼 팔려나갔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10년 간 꽃에 빠져 지낸 김성윤(39) 작가다.

"익숙하고 화사한 꽃 정물인데, 가까이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다. 꽃을 꽂아둔 화병은 동양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다르게, 치열하게 바라보기
그의 꽃 정물 시리즈인 'Arrangement(꽃꽂이)'는 2015년께 시작됐다. 이전까지 그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의 그림은 두 가지 면에서 시선을 사로 잡는다. 우선 화병에 꽂힌 꽃이 다르다. 어떤 꽃봉오리는 뭉개져있고, 어떤 꽃잎은 막 떨어지는 중이다. 꽃 대신 풍선이 자리하거나 폭삭 시든 상태인 것도 있다.
"꽃에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습관처럼 붙지만 오히려 꽃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걸 담고 있는 화기라고 생각했어요. 물을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화기가 될 수 있는데, 무심하게 꽂힌 꽃들이 오히려 상투적이지 않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용과 창작 사이…아카이브의 힘
김성윤의 꽃들은 장미, 라일락, 작약, 해바라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같은 계절에 피지 않는 꽃들을 조합해 놓으니, 현실에선 보기 힘든 구도다. 그를 도운 건 구글. 실제 꽃꽂이를 한 상태의 사진 위에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찾은 꽃들을 컴퓨터 화면 속에서 재조합한 뒤 그린다. 개화 시기와 피는 장소가 다른 꽃들을 한 화면에 담아 시공간을 초월했던 벨기에 정물화 거장 얀 브뤼헐(1568~1625)과 네덜란드 정물 대가 얀 반 허이섬(1682~1749)의 영향을 받았다.김 작가는 시리즈를 하나 시작할 때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빽빽히 구축한다. 마네가 죽기 1년 전 시골 요양 병원에서 그린 16점의 꽃 그림을 모은 책, 미술사의 꽃과 죽음을 표현한 수 많은 그림들을 수집했다.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들은 미술사 속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지만 그는 "그림 속 꽃은 시들지 않는다. 자연의 보편적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그것을 오래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 가깝다"고 말한다.

"낡고 지루한 종교화? 재해석 하고 싶다"
회화 작가 대부분이 혼자 작업하는 것을 즐기지만 김 작가의 경우 좀 다르다. 최근 작품에 등장하는 화병들은 또 한명의 주목 받는 30대 도예가 유의정 작가의 작품들. 둘의 인연은 몇 해 전 경기 남양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함께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4년 간 옆 작업실을 쓰던 그는 전통적인 형식과 동시대 이미지를 뒤섞는 유 작가의 기법에 매료됐다. 그의 도자 작품을 그의 캔버스 안에 불러 들이고 싶다고 제안했고, 유 작가도 흔쾌히 수락했다. 농구공 모양의 청자, 백자 위를 흘러내리는 물감 등의 작업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번 프리즈LA 페어에서도 일부 도자기들이 그림과 함께 놓였다.
그가 존경하는 화가 중 한 명은 데이비드 호크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30대와 40대, 50대 때의 그림이 전혀 다르다는 것. 과거엔 절대 못 그렸을 그림을 노년의 화가가 그리는 것을 보고 '사물을 보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한다고 했다.
"꽃 정물 다음은 종교에 관한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종교화가 오래되고 지루한 그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기 화가들이 보지 못했던, 다른 관점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달해보고 싶어요." 김보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