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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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을 내는 경향이 있는 노인 고객 등을 속여 KTX 요금 운임을 착복한 KTX 역무원이 해고당하자 부당해고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정상 가격으로 현금을 받고 발급한 표를 고객 모르게 중증 장애인 티켓으로 변경해 차액을 가로챈 것이다.

대전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최근 KTX 역무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직원은 횡령 금액이 소액인 점을 들어 해고가 과도하다고 맞섰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할인 티켓 끊어 주고 정상 요금 받아

A는 2003년 8월 입사해 역을 옮겨 다니며 매표 업무를 수행해 왔다.

2020년 전북 지방 KTX 역의 한 매표창구로 발령받은 A는 2020년 7월 경로 운임을 적용받는 노인에게 용산행 KTX 열차표를 끊어주면서 운임의 50%가 할인되는 중증장애인 승차권(1만9600원)을 발매해줬다. 하지만 고객에게는 30%가 할인된 경로할인 운임 2만7400원을 현금으로 수령했다. 차액 7800원을 본인이 챙긴 것이다. 해당 역에서 용산까지의 기본 운임은 3만 9200원이다.

열차 이용 도중 이상하게 느낀 노인 고객이 "왜 내가 장애인 승차권으로 돼 있냐"고 항의하면서 A의 행각이 드러났다. 항의를 받은 승무원은 고객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객의 요청에 따라 7800원을 '환불'해주고 A로부터 돈을 계좌이체 받기도 했다.

이런 일은 열흘 뒤에도 일어났다. A는 63세의 고객에게 용산행 일반승차권을 발매하고 기본운임 3만9200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발매 40초 후 스캐너를 이용해 승차권 '여행 변경'을 통해 50% 할인되는 '중증장애인' 티켓으로 재발매했다.

역무원이 건 스캐너를 통해서 승차권 여행을 변경하는 경우 원래 승차권이 무효가 되지만 외관상 표시가 나지 않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고객은 무효가 된 일반여행권으로 탑승하고 A는 변경된 중증장애인 승차권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1만9600원을 횡령한 것. 이런 사실은 고객이 마일리지 적립액이 절반인 것을 항의하면서 드러났다.

공사의 조사 결과 A는 같은 방식으로 2016년에도 총 8회에 걸쳐 10만1200원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새 역으로 발령받은 2020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7개월 동안 20회에 걸쳐 23만1400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 고객 탄원서까지 제출..."33만원 때문에 해고 너무해"

A는 세 차례에 걸쳐 반성문과 사실확인서도 제출했다. 감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도벽증, 충동조절이 있다고 주장했고, 과거 자신이 기계 고장으로 인해 상당한 금액을 자기 돈으로 채워 손해를 본 일이 발생하면서 이를 보상받으려는 심리 때문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사 징계위원회는 2020년 12월 A에 파면을 의결했고, 공사는 이에 따라 이듬해 2월 해고를 통지했다. 이후 A는 억울한 마음에 전북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결국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는 자신의 행위는 횡령이 아니라 부당발권에 불과하며, 사실확인서 등도 회사의 압박과 강요 탓에 제출했다고 답했다. 본인이 민원인들에게 돈을 지급했고 마일리지도 적립해줬기 때문에 얻은 이익이 없어 횡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비위의 정도도 가볍고 고의가 아니라며 해고 징계가 징계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는 이 과정에서 일부 피해 민원인들과 동료, 지역주민들이 작성한 탄원서도 제출했고, 공사 사장과 국토해양부 장관, 이전 역사의 군수 등으로부터 받은 표창 내역도 함께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부당발권으로 인한 행위는 운임차액을 횡령한 것"이라며 "차액을 가로챈 시점에서 횡령 범행은 이미 기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스름돈 교부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운임차액을 착복하기 위하여 부당발권을 한 점을 보면 횡령이 아니라는 A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확인서와 반성문이 허위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당발권을 하게 된 경위 및 부당발권의 방법 등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히 기재되어 있고 그 기재 내용이 반복돼 있다"며 일축했다. '회계질서 문란'과 '청렴의무 위반'을 파면·해임 중징계 사유로 삼고 감경도 할수 없도록 정한 공사 시행세칙도 근거로 삼았다.

소액횡령 해고언제 가능할까

몇천, 몇만 원을 횡령한 경우 해고까지 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특히 일반 근로자의 경우 회사 비품을 사면서 본인의 개인적 물품까지 함께 구매하는 등 사소한 횡령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해고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소액 횡령이 해고 사유가 되는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업종, 비위행위자의 업무상 역할과 지위, 지속성 여부 등에 따라 다르다.

회사와의 신뢰 관계를 고려하는 경우 소액이라도 해도 중징계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회계·경리 업무를 하는 경우, 회사의 수입 관리 업무를 위임받은 경우가 그렇다.

실제로 법원은 물품 관리 회계직원이 여러 차례 걸쳐 28만7400원을 초과 수령한 사안에서도 파면이 정당하다고 봤다(2012구합36590).

그밖에 8200원을 횡령해 해고당한 버스 운전기사 사건에서도 법원은 "승차권과 버스요금을 직접 수령해 운송 수입금 관리를 일임 받는 버스 운전기사가 이를 유용할 경우 노사 간 신뢰를 치명적으로 해치게 되며 경영에도 심각한 손상을 주게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2011구합25876).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의 임직원에 대해서도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이번 판결의 재판부도 "공기업의 소속 직원은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야 할 도덕적 책임감이 일반 사기업 소속 직원보다 높게 요구된다"며 공기업 특성을 언급했다.

이 밖에도 법원은 다수의 근로자가 비위행위자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서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는 경우, 언론 보도 등으로 회사의 대외적 신인도를 손상한 경우 등엔 금액이 많지 않더라도 징계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법원은 비위행위가 계획적이거나 조직적인 경우거나 개인적 이익을 취할 목적이 있다면 처벌 필요성이 더 크다고 본다"며 "적발되지 않았다면 비위행위가 지속됐거나 더 큰 비위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란 이유"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