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대형 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줄줄이 사직서를 내면서 병원 내 간호사들이 이들의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이전부터 암암리에 이뤄졌던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인력) 간호사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신을 'PA 간호사'라고 밝힌 A씨는 22일 한경닷컴에 "이전부터 수술실에서 전공의들이 하는 업무를 나눠서 해왔다"며 "이번 집단 사직으로 업무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업무량은 늘어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간호사들이 병원을 나간 의사들을 대신해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간호사가 인턴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돼 화제가 됐다. 자신이 '빅5' 대형병원 중 한 곳의 간호사라고 밝힌 작성자 A씨는 "지금 인턴만 파업 중이고 곧 전공의까지 파업한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하니 인턴 업무를 간호사에게 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적었다. '빅5' 병원은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을 말한다.

이를 접한 또 다른 병원 근무자 역시 댓글로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인공호흡기도 진료보조(PA) 간호사가 다루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대학교 커뮤니티에도 "빅5 근무 간호사"라는 제목으로 "간호사가 의사 일을 대신하는 건 이미 옛날부터 해오던 일이라 새삼스럽다"며 "PA라고, 의사가 부족한 비인기 과에서는 간호사가 약 처방, 수술 부위 드레싱 등을 대신해 왔다. 의사 가운 입은 간호사가 한다"고 전했다.

PA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국내 의료법 체계에선 PA 면허가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다.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만 가능하다. 하지만 전공의가 부족한 병원이나 기피과에서는 전공의 대신 봉합이나 절개 등을 PA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병원에서는 약 처방을 비롯해 상처 치료와 소독, 혈액 배양 검사(블러드 컬처)까지 맡고 있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국내 PA 수는 2021년 기준 5619명으로 추산되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1만 명이 넘었을 거라는 얘기도 있다.

병원 내 PA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지만, 이를 양성화하는 것에 대해 의사단체에서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대한의사협회는 PA를 불법 인력이라며 "PA가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를 실시한다면 젊은 의사들의 일자리는 물론 의료체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 안에 존재하는 간호 관련 내용을 별도의 법안으로 분리하는 것을 담았는데, 당시에도 대한의사협회 등이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빈자리를 PA로 채우려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지난 19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향후 심화할 경우, PA 간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대한간호협회는 "협회와 사전 협의한 바 없었으며 이후에도 공식적인 협의가 없었다"며 "정부가 시키는 대로 불법 하에 간호사가 투입돼 의료공백을 메꾸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가 먼저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 보장과 안전망 구축 등의 내용을 법체계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료연대본부도 20일 성명을 통해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 인력에게 연차사용을 권하는 등 긴급한 스케줄 조종도 종용되고 있다"며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 시켜 불법의료를 조장하고 있고 주 52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며 근무시간 변경 동의서를 받는 병원도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