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이 20일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을 선언한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20일부터 본격화한 가운데 증원을 막으려는 의사 단체와 2000명의 증원 규모를 사수하려는 정부 간 논리 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은 저출산·고령화, 의학 교육의 질 유지 등을 위해선 증원을 350명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의사 단체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설득력이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도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더 늘어나고 의대 학생이 감소하는 동안 교수가 급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2000명 증원은 감당 가능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는 설명이다.2035년이면 입원일수 45%↑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의사단체는 인구가 줄어 의사를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가장 급격한 고령화를 겪는 한국은 의대 증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이는 한국 인구가 2020년(5184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전환해 의대 증원은 불필요하다는 의협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지난해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은 2063년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6.4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43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면서 의사 부족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정부는 이런 주장은 진료 수요가 큰 고령층이 빠르게 늘어 전체 의료 수요가 폭증하는 점을 외면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연평균 증가율은 4.4%에 달했다. OECD 평균인 2.6%에 비해 70% 빠른, 세계 최고 속도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203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520만8000명(전체 인구의 29.9%)으로 2022년(898만1000명)보다 7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65세 이상 1인당 입원 일수는 20대의 17.6배, 30대의 12.1배에 달한다. 이로 인해 2035년 국내 전체 환자의 입원 일수는 2022년 대비 45%, 외래 일수는 13% 급증해 큰 폭의 의대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전문가들 역시 대부분 정부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정부가 5년간 2000명씩 총 1만 명의 증원 규모를 결정한 근거로 제시한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연구 등은 모두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면서 2035년 최소 1만 명 이상의 의사 인력 부족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박 차관은 “2000명 증원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를 고려한 결과”라고 말했다.정원 줄었는데 교수는 늘어현재의 의대 교육 인프라가 2000명의 증원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양측은 대립하고 있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협회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350명이 적정 증원 규모라고 밝혔다. 350명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 요구로 감원된 인원이다.이에 대해 복지부는 20일 브리핑에서 “40개 대학이 증원 수요로 제시한 2151명은 총장의 책임 아래 학교 전체 사정을 감안해 제출된 것”이라며 “2000명 증원은 충분히 수용 가능한 규모”라고 반박했다.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계기로 의사 달래기 차원에서 2006년 무렵부터 3058명 선으로 줄었다. 감축은 정원 규모가 컸던 서울대, 부산대 등 국립대 중심으로 이뤄졌다. 복지부에 따르면 1980년대 260명이던 서울대 의대 정원은 현재 135명으로 줄었다. 부산대도 208명에서 125명으로, 경북대는 196명에서 110명으로 줄었다.반면 서울대 의대의 임상 교수는 1985년 대비 세 배로 늘어나는 등 의대 전반의 교육 인프라가 과거에 비해 개선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대 정원이 더 많았던 때 교육받은 의사들의 역량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며 “의대 증원으로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란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한국 의사의 사업소득이 변호사와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원한 전문의와 일반 근로자 소득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컸다.20일 국세청의 ‘전문직 종사자 업종별 사업소득 백분위 현황’에 따르면 2021년 전문직 업종 중 의사·한의사·치과의사 등이 포함된 의료업종 종사자 7만6673명이 얻은 소득(총수입에서 필요경비 차감)은 총 20조5969억원이었다. 의사 1인당 평균 사업소득으로 환산하면 2억6900만원에 달했다.다른 전문직 종사자의 1인당 평균 사업소득은 △회계사(1억1800만원) △변호사(1억1500만원) △변리사(9300만원) △세무사(8100만원) △관세사(6400만원) △법무사(48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의료업종 상위 1% 소득자는 766명으로, 총소득금액은 1조9885억원으로 집계됐다. 인당 평균 25억9600만원에 달했다. 의료업종 전체 평균 소득과 상위 1% 구간의 소득은 9.6배 격차를 보였다.우리나라 개원 전문의 소득과 전체 근로자 평균 임금 간 격차는 관련 통계가 공개된 OECD 33개 회원국 중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OECD가 지난해 발간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에 따르면 국내 개원 전문의 소득은 전체 근로자 평균 대비 6.8배였다. 이어 벨기에(5.8배), 독일(5.6배), 프랑스(5.1배), 오스트리아(4.5배), 캐나다(4.2배), 이스라엘(4.0배), 호주(3.8배), 네덜란드(3.3배), 스위스(3.2배) 등의 순이었다.봉직의(월급 의사) 전문의인 경우에도 한국은 통계가 공개된 국가 중 두 번째로 격차가 컸다. 봉직의 기준 소득 격차가 가장 큰 나라는 4.7배인 헝가리였고, 이어 한국과 칠레가 4.4배로 두 번째였다. 일반 개원의와 전체 근로자 임금 간 소득 격차는 독일이 5.0배로 가장 컸다. 이어 영국(3.4배), 오스트리아·스위스·에스토니아(3.1배), 한국·아일랜드·프랑스(3.0배) 등의 순이었다.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의료개혁을 절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며 정부가 집단행동에 나선 의료계와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놓고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을 일축했다.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안보, 치안과 함께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이자 정부에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책무”라며 이같이 말했다.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28차례나 의사단체를 만나 대화하며 의료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며 “의사들을 위한 사법 리스크 감축, 지역 필수의료에 대한 정책 수가 등 보상체계 강화,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 지원 등을 함께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전공의 사직 등 집단 휴진을 예고해 수술이 축소되거나 암 환자 수술이 연기되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의료 현장의 주역인 전공의와 미래 의료의 주역인 의대생들이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윤 대통령은 또 “의료개혁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내각 전부가 일치단결해서 국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일각에서 2000명 증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허황된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이날도 전국 각지의 전공의와 의대생이 ‘집단행동’에 동참했다. 이날은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 시한으로 못박은 날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밤까지 국내 100개 병원에서 전공의 6415명이 사직서를 냈다. 이들 중 1630명은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환자 피해도 속출했다. 정부가 전날부터 개설한 피해신고센터에 34건의 피해 상담 사례가 접수됐다. 수술 취소 25건, 진료예약 취소 4건 등이다. 교육부 의대 상황대책팀에 따르면 국내 7개 의대에서 1133명이 휴학을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대위는 “개별적인 자유 의지로 사직한 전공의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헌법과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한 집단에 폭력을 휘두르는 이 상황이 독재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밝혔다.양길성/이지현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