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은 인터뷰 전혀 안합니다."

1998년 발표된 소설 <모순>이 지난주 한국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기준)에 5주째 올랐다.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 소설을 쓴 양귀자 작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이같은 답변을 받았다. 작가 인터뷰를 비롯해 특별한 이슈나 흔한 광고·마케팅 없이 26살 된 소설이 제일 잘 팔리는 책 목록 1위에 오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독자 절반 이상이 2030 여성

이 소설은 <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등 1980~1990년대 베스트셀러를 줄곧 내놓은 양귀자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간 한달 직후인 1998년 8월 문학·비문학 포함 종합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그해 11월까지 다섯달 동안 소설 분야 1위를 줄곧 지킨 화제작이다.
26년간 베스트셀러 오른 작가 “아주 천천히 읽어줬으면”
199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25살 여성 안진진이 화자로 등장한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의 삶은 결혼 이후 극단으로 갈렸다. 이모는 부유하고 성실한 이모부와 결혼해 우아하게 사는 반면, 술버릇 나쁜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는 시장에서 내복을 팔며 억척스레 산다. 엄마와 이모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보고 자란 안진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랑'이냐 혹은 '안정'이냐다.

발간 당시 대형 베스트셀러로 2000년까지 꾸준히 순위권에 오른 이 소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20년께부터다. 2020년 2월 한국소설 19위에 오른 뒤 지금까지 줄곧 20위권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기를 유지 중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흥행 등 국내 페미니즘 열풍 속에서 양귀자가 여성주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언급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 다수의 북튜버(책을 다루는 유튜버) 채널이나 각종 SNS에서 이 소설을 추천하는 경우도 늘었다.

이 책의 출판사 쓰다의 심은우 대표는 "2013년 4월부터 개정판을 발간해 왔는데 지금까지 대략 100쇄 정도 찍었다"며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왔다"고 말했다.

특히 2030 여성 독자층에 인기가 많다. 지난주 기준 이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독자층은 20대 여성으로, 전체의 28.5%를 차지했다. 이어 30대 여성이 24.4%로, 2030 여성 구입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성별 전체로는 여성 독자의 비중이 73.8%로 남성(26.2%)보다 세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최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책들은 주요 독자층이 40대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20대 여성 독자층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아 다소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인생의 모순 담아

양귀자가 여성주의 작가로 거론되긴 하지만 이 소설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둬놓고 해석하긴 무리가 있다. 오히려 소설 속 주인공 안진진은 때때로 결혼이 특히 여성에게 '인생 최대의 중대사'라는, 지금과 다소 거리가 있는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가 병에 걸려 돌아왔을 때 기꺼이 다시 받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전통적인 여성상의 전형이기도 하다.
26년간 베스트셀러 오른 작가 “아주 천천히 읽어줬으면”
이 소설은 성별의 구분을 넘어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을 섬세하게 활자로 풀어냈다. 안진진의 렌즈를 통해 어머니와 이모 뿐 아니라 남동생, 아버지, 이모부 등 주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았다. 선보다 악, 행복보다 불행을 선택하게 만드는 인생의 모순과, 어쩔 수 없이 그 모순을 손잡고 살아가야 하는 고민이 형상화돼 있어 시대를 넘어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준다는 분석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과 문학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췄을 때 시의성과 관계 없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는다"며 "<모순>은 여러 번 읽어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독자들에게 '인생책'으로 꼽힐 만큼 깊은 공감을 주면서 생명력을 계속해서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귀자 인터뷰를 아래 소설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로 갈음한다.

"독자들이 어떤 식으로 읽어내든 소설이란,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에 맞추어 소설 자신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다. (중략)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중략) 이 소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