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 휴게공간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19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 휴게공간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아이가 인공호흡기를 차고 있어 외출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이 데리고 힘겹게 병원까지 왔는데 평소와 달리 1개 과의 진료만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30분 이상 대기해야 했는데 파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보호자 휴게공간에서 만난 30대 장모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소 어린이병원 호흡기과를 포함해 여러 과의 협진 진료를 본다"면서 "한 달에 2~3회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는데 소형 병원에선 아이의 다루기 어려운 상황이라 파업이 장기화하면 아이의 질병 관리에 지장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을 선언한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일부 전공의들이 단체 행동 개시 시점인 20일 오전 6시보다 하루 일찍 근무를 중단하고 병원을 비웠다. 이에 세브란스 병원 측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전국 단위의 전공의 파업에 대한 여파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병원 곳곳서 '진료 균열' 조짐

세브란스병원 본관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사진=김영리 기자
세브란스병원 본관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사진=김영리 기자
19일 오후 1시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 본관. 일부 안내 직원들은 "파업으로 인한 진료 차질에 대해선 들은 바 없다"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병원 곳곳에서 전공의 부재로 인한 의료 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관에서 만난 마취통증의학과 소속의 한 간호사는 "전공의 업무 중단으로 인한 진료 차질이 여파가 크다"며 "현재 외래 진료는 평균 한 달씩 연기되고 있고, 당장 이번 주 수술은 전부 미뤄졌다"고 밝혔다.

이어 교수가 진료 업무를 중단하는 게 아닌데도 외래 진료까지 미뤄지는 이유를 묻자 "분과별 전공의의 진료 개입 정도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며 "통증 센터의 경우 류마티스 환자가 많아 외래 진료 시 시술이 잦다"며 "시술은 대부분 전공의가 하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진료실 앞. /사진=김영리 기자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진료실 앞. /사진=김영리 기자
다른 분과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이병원 외래 진료실 앞은 대기 인원으로 북적였다. 병원을 방문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전공의의 파업 소식을 접하고 혹시라도 진료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한 보호자는 어린이병원 안내 직원에게 "본관에서 접수했는데 대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며 "본관 직원이 어린이병원으로 바로 가보래서 왔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는 거냐"고 토로했다.

이날 오전 어린이병원에서 자녀 외래 진료를 봤다는 보호자 김모 씨는 "커뮤니티에서 지난주부터 외래 진료가 미뤄졌다는 글을 꽤 봐온 터라 마음을 졸이며 병원에 왔다"며 "무사히 진료를 마쳤지만 (진료가) 연기됐다면 난처할뻔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걱정이 클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의협 "통보식 의대 증원 받아들일 수 없다"

19일 오전 서울대병원 내과 종합구역 현황판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19일 오전 서울대병원 내과 종합구역 현황판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이날 세브란스병원, 대한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1∼3년 차를 포함해 전국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제출한 사직서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2000명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한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박단 회장(세브란스병원 소아응급의학과 전공의)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현장 따윈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의 꿈을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 다시 돌아갈 생각 없다"고 밝혔다.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조직위원장(서울특별시의사회장)은 한경닷컴에 "빅5 병원 전공의들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지를 나온 상황이며, 규모는 파악 중으로 내일께 알 수 있다"며 "정부가 전공의 근무 중단에 대해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황이라 우리도 협상안을 준비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통보를 철회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협상을 제안한다면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진료과가 여러 개라 각 과에 맞게 전공의 업무 중단에 대응하고 있고, 업무 중단 의사를 밝힌 전공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확인 중에 있다"며 "진료 공백이 없게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복지부는 이날 오전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의료법에 근거해 진료 유지명령을 발령했다. 이를 위반한 의료기관에 15일의 업무정지나 폐쇄 명령 등의 행정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김윤 교수 "파업 장기화 가능성 있어"

19일 오후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사진=김영리 기자
19일 오후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사진=김영리 기자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해 각국에서 의사 수를 늘리고 있는 가운데 해외 의대 증원 사례와 비교하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사들은 이번에도 정부 정책을 파업으로 무릎 꿇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 정부 입장에선 의사 부족 문제가 이제는 정말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된 상황이라 정책을 쉽게 철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일 이번에도 정부가 의사의 요구 사항을 수용한다면 우리나라는 다시는 의사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며 "이번 파업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전공의 공백이 체감되는 곳이 입원이나 수술 분야일 텐데, 현재 대학병원의 전공의 비중이 30~40%, 중증 환자 비중이 40% 정도이기 때문에 전공의 인력이 빠져도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하면 당장의 중증 환자는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효율적인 진료와 치료, 원무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