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는 지난해 여름께 ‘비밀 조직’ 하나를 만들었다. 사내에선 ‘이머시브(immersive·몰입) 팀’이라고 불렸다.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 인원이 근무하던 이 팀의 인원은 최근 1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삼성전자가 구글, 퀄컴 등 오랜 동맹 기업과 함께 확장현실(XR) 헤드셋 기기를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내기 위한 조직 확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최근 출시한 ‘비전 프로’가 한 달도 안 돼 20만 대가량의 판매 실적을 거두는 등 XR 시장이 확대되면서 삼성전자의 ‘무서운 추격자’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XR 헤드셋 시장 만개하나

삼성 "애플에 XR 헤드셋 뺏길라"…에이스급 인재 100여명 모았다
XR 헤드셋 개발을 위한 조직 강화엔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노 사장은 지난해 2월 XR 기기 개발을 발표하면서 “차세대 XR 경험을 공동 구축해 다시 한번 모바일의 미래를 변화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이머시브 팀의 인원을 늘리면서 기술 개발부터 마케팅, 기획 등에 이르는 주요 부서에서 핵심 인재를 차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XR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통칭한 개념이다. 최근 인공지능(AI)과 함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첨단 기술이다. XR 헤드셋에 장착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기술이 진화하면서 공상과학 속에나 머물던 XR 헤드셋 시장이 만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산업계에선 XR 기술이 일상생활뿐 아니라 향후 건설, 의료, 소방 등 산업 현장에까지 응용처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글, 애플과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든 이유다. 삼성전자도 기술 개발 속도를 높여 시장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XR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추격자다. 구글, 퀄컴과 손잡고 XR 기기를 개발 중이다. 최근 퀄컴은 XR 기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 ‘스냅드래곤XR2+’를 공개했다. 업계에선 하드웨어 강자인 삼성전자가 칩셋과 운영체제(OS) 분야 최강자들과 뭉친 만큼 혁신적인 기기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 사장도 “업계의 대표적인 리더들과 추진하는 개방적이고 검증된 신뢰할 수 있는 협업으로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했다.

○애플 이어 소니까지 뛰어들어

애플 ‘비전 프로’
애플 ‘비전 프로’
XR 기기 시장은 글로벌 기업 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올해 글로벌 XR 헤드셋 출하량이 1100만 대로 전년 대비 47%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선구자 역할을 해 온 메타의 ‘퀘스트’가 가격, 기술력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메타는 2014년 처음 XR 헤드셋 시장에 진출해 지난해 말 퀘스트3까지 출시했다. 499달러로 애플의 비전 프로(3500달러)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퀘스트3의 지난해 4분기 출하량은 200만~270만 대인 것으로 추산된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비전 프로가 XR 헤드셋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비전 프로는 ‘얼리 어답터’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제품의 기술력과 완결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연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니는 독일 지멘스와 손잡고 만든 XR 헤드셋 ‘헤드마운트’를 하반기 공식 출시할 예정이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