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주요 금융지주 사외이사 70% 이상이 다음달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당국이 사외이사 선임·평가 절차 등을 강화한 지배구조 개선 권고안을 마련했지만 올해도 사외이사 물갈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제성이 없는 권고안으론 관례화한 사외이사 연임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임 불가 사외이사는 5명뿐

'거수기' 금융지주 사외이사 올해도 대거 유임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7명 가운데 27명(72.9%)이 오는 3월 임기가 끝난다. 신한금융은 사외이사 9명 전원의 임기가 만료되고 하나금융도 전체 8명 중 6명(75%)의 임기가 종료된다. 우리(4명, 66.7%) KB·농협(4명, 57.1%) 금융도 절반을 웃도는 사외이사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70%가 넘는 사외이사가 교체 대상이지만 바뀌는 폭은 20% 수준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지주 사외이사 임기는 ‘2+1’(최초 2년, 연임되면 1년 추가) 방식으로 결정하는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최장 임기까지 보장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임기는 KB금융만 5년이고 나머지는 6년이다. 은행과 카드사 등 계열사를 포함하면 9년까지 사외이사를 맡을 수 있다.

다음달 최장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는 김경호 KB금융 이사회 의장과 성재호 신한금융 이사, 김홍진 하나금융 이사회 의장과 양동윤·허윤 이사 등 5명에 그친다. 이윤재 신한금융 이사회 의장은 1년 더 연임이 가능하지만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로 물러나는 사외이사가 없다면 27명 중 6명(22%)만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5대 금융지주에서는 작년에도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 25명 중 80%인 20명이 재선임됐다.

○절반 가까이가 교수

뚜렷한 대주주가 없어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총자산이 3000조원을 넘는 회사의 회장을 뽑는 권한을 갖고 있다. 사외이사 역시 동료 사외이사들이 후보를 천거하는 ‘셀프 추천’ 방식으로 선임된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지만 금융지주 회장들이 사외이사 후보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회장은 친분이 있는 교수와 전직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사외이사직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치고, 이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들은 회장을 연임시키는 유착 관계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수 등 학계에 치우친 사외이사 구성도 문제로 꼽힌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7명 중 16명(43.2%)은 전현직 교수다. KB금융(57.1%) 신한금융(55.5%)은 사외이사 중 교수 비중이 절반을 웃돈다. 업계 실무 경력이 없는 탓에 경영진 감시·견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 S&P500 기업들의 작년 신규 선임 이사 중 학계 비율은 4.3%에 그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을 내놓고 이사들의 은행·보험·증권 업무 수행 경험 여부를 확인해 ‘역량 평가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금융지주는 ‘사외이사 구인 대란’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매달 이사회와 소위원회 참석 등 일반 기업 사외이사보다 업무가 많은 편이다. 다른 회사 사외이사와 겸직할 수 없어 지금도 사외이사 모시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한 금융지주 이사회 사무국 관계자는 “실무 경력이 풍부한 현직 기업인들이 사외이사를 꺼리는 국내 문화 특성상 학계 인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