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분석 좌담회…"승계만을 위한 게 아니라면 불법행위 용인되나"
참여연대·민변 "'이재용 무죄' 1심 재판부, 본질 회피한 판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서 '승계만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목적이 아니었다'며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대법원 판단과 모순될 뿐 아니라 본질을 회피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은 7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삼성물산 불법합병 1심 판결 분석'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 참석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이동구 변호사는 "승계만을 위한 게 아니라면 모든 불법 행위가 용인되느냐"며 "합병이 미래전략실 주도로 추진된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우니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종보 민변 변호사도 "합병의 가장 큰 목적은 이 회장의 지배력 확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거나 '약탈적 합병'이 아니라는 판단은 본질을 회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행위 하나하나를 잘게 쪼개고 전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아 무죄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일반적인 기업 실무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보고서 수준이라고 평가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프로젝트-G' 등 내부 문건에 대해서도 "여러 문건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고 이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승계 계획안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며 "합병 전후의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판단했다면 이런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 비율 자체가 합병의 불공정성·약탈성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임에도 합병이 불법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1:0.35' 비율 자체에 대한 판단을 피해 갔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이미 합병 비율에 문제가 있다고 본 주식매수 가격 결정 사건(이른바 '일성신약 사건)'의 대법원 판단과도 모순된다"며 "합병과 합병 비율을 의도적으로 분리해서 판단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1심은 합병 비율 자체가 부당하게 설정됐다는 점을 부정하면서 이를 위한 시세조종과 분식회계도 없었다고 판단했다"며 "재판부가 삼성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의결 과정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에피스, 바이오젠의 감사보고서와 연간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관계마저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엘리엇은 해외자본으로서 ISDS(국제투자분쟁)를 통해 합병에 따른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었던 반면 오히려 같은 지위의 국내 주주들은 불법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는 차별적 결과가 발생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