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들라크루아 ‘파리, 눈 내리는 밤’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 눈 내리는 밤’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

유럽사를 보다 보면 이런 이름으로 구분되는 시대가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전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 경제와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입니다. 예술에서는 고흐와 고갱, 로트레크가 카페에서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과학에서는 전화, 철도, 엘리베이터, 자가용, 비행기가 등장한 때.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신 인생의 ‘벨 에포크’는 언제였나요.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은, 어린 시절일 겁니다. 모든 색과 향과 맛이 지금보다 신선하고 선명하게 느껴졌던 시기.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즐거울 거라고 기대하던 시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듬뿍 사랑받으며, 매일 밤 아무 걱정 없이 잠들던 그 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평생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에서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프랑스의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91)도 그렇습니다. 1933년생인 그만의 ‘벨 에포크’는 프랑스 파리의 1930~1940년대였습니다.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 등 파리의 랜드마크부터 어릴 적 눈 속에서 강아지와 뛰놀던 기억, 그리고 엄마와 나비를 잡았던 추억까지. 들라크루아는 지난 50여년간 그 시절을 화폭에 담아왔습니다. 순수하고 동화 같은 붓 터치로 그림에 담은 들라크루아의 따뜻한 기억들은 세계 곳곳에서 300번 넘는 개인전을 통해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오는 3월 31일까지 열리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전시장에는 그의 추억이 담긴 그림이 가득합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 눈싸움하는 아이들, 그 옆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연인들…. 그림 속 소소하면서도 낭만적인 순간들은 1930년대 파리라는 시공간을 넘어 보는 이들 각자의 마음 속 근원적인 향수(鄕愁)를 건드립니다. “좌절과 실망으로 얼룩진 나날에 가려 나를 만들어준 시간을 되돌아보지 못했는데, ‘어떤 기억도 결국 사랑으로 추억된다’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다”는 관람객 후기(아르떼 회원 ‘sparkler’)처럼요.

올해 91세인 그는 여전히 붓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전시장의 마지막에는 그가 지난해 그린 신작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는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림 그리는 데 쏟습니다. 최근엔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집 뒷마당에 새로운 스튜디오까지 지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긴 삶의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 저도 많은 사람처럼 큰 만족, 몇몇 기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론 짊어지기 무거운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림은 제게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평생토록 떠올리며 살 수 있다는 건 한편으로 부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들라크루아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시절과 생생하게 맞닿을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이번 설 명절에는 가족들과 어린 시절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워 보세요. 함께 웃으며 소중한 시간을 나눠 보세요. 훗날 ‘벨 에포크’로 기억될 만큼,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