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주요국 절반도 못 미쳐…선진국들, 의대 증원 파격적으로 늘려
의사 1명당 진료환자 수는 OECD 최고…의사에게 질문도 못하고 '3분 진료'
정부, 10년 뒤 의사 1만5천명 부족 판단…"이번엔 반드시 늘린다"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에 파격 증원 결단 내렸다
정부가 내년 의대 입학정원을 파격적인 수준인 2천명 늘리기로 한 것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의대 입학정원은 20년 가까이 묶여 있어 주요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10년 후에는 1만5천명가량 의사가 부족하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이러한 의료인력 부족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의료 붕괴 상황을 만들었다.

의사가 부족해 진료 시간이 지나치게 짧은 점 등도 정부의 증원 결정에 반영됐다.

◇ 의대 정원 20년째 3천58명…주요국 절반도 못 미쳐
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의대 정원(3천58명)은 주요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내년 의대 정원을 못 늘리면 2006년 이후 20년째 동결이다.

복지부가 조사한 국가 가운데 한국(2020년 기준 5천184만명)과 인구가 가장 비슷한 영국(6천708만명)은 2020년에 의대 42곳에서 모두 8천639명을 뽑았다.

우리보다 인구가 다소 많은 독일(8천317만명)의 경우 같은 해 39개 공립 의과대학의 총정원이 9천458명에 달했다.

호주가 총 3천845명(21개 대학 기준)을 뽑아 우리와 가장 비슷했지만, 호주 인구(2천566만명)는 우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지금도 우리보다 의대 정원이 훨씬 많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정원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 서비스 수요가 지금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독일은 의대 정원을 1만5천명가량으로 늘리기로 했고, 영국도 2031년까지 1만5천명까지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독일과 영국의 의대 입학 정원은 각각 우리나라의 무려 5배에 달하게 된다.

프랑스, 일본 등도 고령화 추세에 맞춰 의대 정원을 지속해서 늘려가고 있다.

카를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은 지난해 이런 계획을 밝히면서 "우리는 즉시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베이비붐 세대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에 파격 증원 결단 내렸다
◇ OECD 대비 의사 수 부족…환자 질문할 기회도 없이 '3분 진료'로 끝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보다 총 병상수, 접근성, 의료 서비스의 질 등 여러 측면에서 의료 사정이 좋다.

의료진의 실력과 의료 기술 수준도 세계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의사 수는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OECD가 지난해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을 보면 한국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평균인 3.7명보다 훨씬 적다.

또 2021년 한국의 의사 1인당 진료 인원은 6천113명으로, 관련 통계가 있는 OECD 32개국 가운데 가장 많았고, OECD 평균인 1천788명의 3.4배에 달했다.

의사 수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환자들의 '의료쇼핑' 관행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의사 1명이 진료한 환자가 많다 보니 진료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발표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1차 의료 진료시간은 평균 4.3분으로, OECD 평균(16.4분)의 4분의 1 수준으로 짧았다.

'3분 진료'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진료 시간이 짧기 때문에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할 시간도 부족하다.

연세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환자가 진료 중 의사에게 질문할 수 있는 확률은 비교 가능한 7개 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고 한다.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에 파격 증원 결단 내렸다
◇ 지역·필수의료는 '벼랑 끝'…'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내몰려
의사 수 부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으로 요약되는 지역·필수의료 분야다.

지역의료 인프라 부족에 환자들이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병원)이 있는 서울로 몰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방 거주자 중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인원은 2013년 50만245명에서 지난해 71만3천284명으로 42.5% 급증했다.

복지부 조사에서도 지역의료기관 입원환자 중 해당 지역 환자의 구성비를 나타내는 지역환자 구성비가 서울이 59.7%로 가장 낮았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 10명 중 4명은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뜻이다.

필수의료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정부의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소방본부 구급대원은 '응급실 뺑뺑이'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심정지 환자를 이송하며 관내 병원에 문의했지만, 4개 응급실에서 병상 부족과 의료진 부재로 수용 불가를 통보했고, 결국 대구까지 편도로 100㎞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응급차 안에서 심폐 소생술을 이어갔다고 한다.

소아청소년과가 줄어들면서 소아환자와 보호자가 병원 문을 열기 전부터 길게 대기하는 '소아과 오프런'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복지부는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상황을 '벼랑 끝'으로 규정하고 의사인력 확충 등 의료 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의사 인력 확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에 파격 증원 결단 내렸다
◇ "10년 뒤 의사 1만5천명 부족…이번엔 반드시 늘려야"
정부는 이번에 정원 확대 규모 발표를 앞두고 증원 의지를 점차 더 강하게 피력해왔다.

최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에 앞서서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이 "이번에 반드시 (증원)해야겠다는 생각이고, 이번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초고령사회에 늘어날 의료 수요나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 등에 대응하지 못하고, 지역·필수의료 상황도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연구 결과에 따라 2035년이면 의사가 1만5천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2035년까지 1만5천명 의사 추가 확보'라는 증원 계획을 밝힌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생을 늘리고, 증원 후에는 네덜란드의 의료인력자문위원회(ACMMP)와 일본의 의사수급분과회를 참고해 인력 수급 정책을 체계화한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