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실적 결산에 들어간 금융회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환원책 확대를 주문하는 동시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을 요구하면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국의 정책 방향을 놓고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주문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5일 한국경제신문이 17개 KRX 업종별 지수의 최근 2주간(1월 19일~2월 2일) 등락률을 분석한 결과 KRX 보험지수가 상승률 1위(28.4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KRX 은행지수(22.17%)와 KRX 증권지수(19.07%)도 각각 상승률 2위, 4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5.77%)을 압도했다.

보험·은행·증권주는 주가 변동성이 작은 가치주로 유명하다. 이들 주가가 급등한 배경에는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기재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금융회사들이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확대하면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당사자인 금융사들은 난처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주주환원 확대와 건전성 강화라는 상충된 목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 압박이 거세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단기 성과에 치중해 PF 손실 인식을 회피하면서 남는 재원을 배당·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사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당국의 정책 스탠스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 지시에 따라 배당을 덜 주고 충당금을 쌓자니 금융위원회 정책이 부담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금융위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상장사가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경우 명단을 공개하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공개 거론해 망신 주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자본 여력이 큰 대형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형사 간 입장차도 크다. 최근 하나금융지주,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은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주주환원책을 발표했다. 한 금융업종 애널리스트는 “지방은행, 중소형 증권사 등은 충당금 추가 적립으로 작년 4분기 실적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 회사는 건전성 지표도 상대적으로 나빠 배당 규모가 전년 대비 많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도 배당 방침 개입의 주요 잣대로 건전성 지표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 원장은 이날 업무계획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당국이 요구하는 충당금 등 조건을 맞춘 이후에도 초과이익이 많다면 주주환원을 통해 적정한 주가 평가를 받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