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내달 1심서 재판개입·비판세력 탄압 등 유죄 가능성
7년간 나라 뒤흔들었지만…"누구에게 책임 물어야 하나"
양승태 1심 무죄…사법농단 실체, 일부 실무자 일탈로 귀결되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사법농단' 혐의 전체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사법부 전체 신뢰를 뒤흔들었던 사건의 실체가 '일부 실무자들의 일탈'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총 14명의 피고인 중 13명에 대해 하급심 법원 판단이 나왔거나 대법원에서 확정된 가운데, 일부 혐의만이라도 유죄를 선고받은 사례는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2명뿐이다.

다만 하급심의 결론을 종합하면 '최상위 실행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내달 초 1심 선고에서 일부 유죄 판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7년 전 나라를 들썩였던 사법농단의 최종 법적 책임자가 대법관도 아닌 차관급 판사라는 허탈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인 만큼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인다.

◇ '재판개입 의혹' 양승태 등은 무죄…임종헌은 일부 혐의 인정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 '재판개입' 의혹의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우선 강제동원 재상고심 재판과 관련해 주심 대법관에게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한 것에 대해 "대법원장은 소부 사건에 대해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며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봤다.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에 '직권 취소' 의견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한 것에 대해서는 재판개입에 해당한다며 박 전 대법관이 가담했다고도 언급했지만, 마찬가지로 실행자인 이규진 전 부장판사에게 재판개입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해 서기호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판사 재임용 탈락 불복 행정소송과 관련해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통해 재판부에 '기일 진행' 의견을 제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직권을 남용했으나 당시 수석부장판사나 재판부가 이에 따라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재판부는 이들의 전 단계인 임 전 차장의 '재판개입' 관련 일부 혐의는 유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앞선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과 관련해 심의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행위는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2015년 9월 전주지법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과 관련해 사법총괄심의관에게 재판부 심증을 확인하도록 하고, 재판장에게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방법'이라는 법리를 전달하게 한 행위도 직권남용죄 구성 요소에 모두 부합한다고 봤다.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이 헌법재판소가 한 통진당 소속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해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비판 보고서 작성을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지시한 것도 직권남용죄의 4가지 구성요소를 충족했다고 봤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 전 대법관과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양승태 1심 무죄…사법농단 실체, 일부 실무자 일탈로 귀결되나
◇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임종헌 일부 직권남용만 인정
사법농단 사건의 또 다른 줄기인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판단도 유사했다.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직권을 남용하지는 않았다는 취지가 주를 이뤘다.

반면 재판부는 이 의혹에서도 임 전 차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탄압 관련 직권남용 혐의는 일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6년 3월∼2017년 2월 임 전 차장이 심의관에게 지시해 인사모 와해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중복 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도록 유도한 것에 대해 직권을 남용해 법관의 표현·연구의 자유를 침해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임 전 차장은 인사모 해산을 위해 이듬해까지 대응 방안을 심의관에게 지시했다"며 "인사모 제재와 와해 목적을 숨기고 반발을 우회하기 위해 코트넷에 공지를 게재하게 했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이나 고 전 대법관과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이 의혹과 관련해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의 2심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모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의 결론과는 배치되는 만큼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양승태 1심 무죄…사법농단 실체, 일부 실무자 일탈로 귀결되나
◇ 최종 법적 책임자 '행정처 차장'이라는 결과…이탄희 "누가 책임지나"
이처럼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가 임 전 차장의 일부 혐의에 대해 사실상 인정 판단을 하면서 임 전 차장 재판부도 내달 5일 예정된 선고에서 같은 판단을 해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높다.

임 전 차장은 이와 별도로 국회의원 관련 '재판 민원', 산케이(産經)신문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서울지국장 사건 개입, 메르스 사태 관련 박근혜 정부 법적 책임 면제 검토, 법관 사찰 등 혐의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판사 가운데 유죄 선고는 임 전 차장과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등 3명에 그치게 되는 셈이다.

1심 판단만으로 최종 결론을 예단하기엔 이르지만, 2017년 2월 첫 의혹 제기 후 7년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법농단의 실체가 임 전 차장 등 '고위 실무자들의 일탈'이라는 다소 허탈한 결과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미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 중 상당수는 법원 내 징계를 받고 퇴직했다.

앞서 국회는 무죄가 확정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해 헌정사 첫 '법관 탄핵소추'를 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임기 만료로 퇴직한 피청구인에 대해서는 파면 결정을 선고할 수 없다"며 각하한 바 있다.

이에 '사법농단 폭로자'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양승태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또는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상반된 주장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애초에 사법부 수뇌부가 연루됐다는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가 없었던 만큼 이같은 결론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반적인 행정부 조직과 달리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직접 실무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사법행정의 특징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