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미국 현지 반도체·배터리공장 건설, 계열 건설사가 수주
미국 수주액 89%가 계열사 물량…"수주 '착시효과', 수주의 질 높여야"
작년 해외건설 수주 331억달러, 계열사 물량 빼면 200억달러대로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 규모가 4년 연속 300억달러(약 40조원)를 넘어섰지만, 계열사 물량이 100억달러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대응에 나선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배터리·반도체 공장 설립에 나섰고, 이를 건설 계열사가 수주해 나타난 '착시효과'로 해외건설 수주 규모가 커진 것이다.

계열사 물량을 빼면 작년 해외건설 수주는 2019년(223억달러) 수준인 200억달러대로 떨어지므로 '수주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21개 건설사는 95개국에서 333억1천만달러를 수주했다.

이는 전년보다 7.5% 늘어난 액수다.

수치상 2019년 223억달러로 떨어진 해외건설 수주액은 2020년 351억달러로 늘었고, 2021년 306억달러, 2022년 310억달러 등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긍정적인 수치만은 아니다.

지난해 300억달러대 수주는 미국이 이끌었다.

미국 수주액(99억8천만달러)이 전체의 30%를 차지하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해외 건설수주 1위 국가를 차지했다.

이는 1965년 해외건설 수주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해외건설 수주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0.8%(2억9천만달러) 수준이었으나, 2021년 3.1%(9억4천만달러), 2022년 11.2%(34억6천만달러) 등으로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미국 수주액의 88.5%(91억2천만달러)는 현대차,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사의 현지 생산설비 건설공사다.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IRA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미국 현지 공장 증설에 나선 영향으로 미국 수주가 늘었다.

작년 해외건설 수주 331억달러, 계열사 물량 빼면 200억달러대로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배터리 합작공장 L-JV 프로젝트(12억달러)와 S-JV프로젝트(17억5천만달러), 미국 현대차 공장 신축공사(6억7천만달러), 현대글로비스 공장 신축공사(1억7천700만달러) 등을 수주했다.

미국 외 국가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이 베트남 삼성전기 'SEMV FCBGA' 증설공사(2억1천300만달러), 삼성물산이 중국 시안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신축공사(2억800만달러), 삼성엔지니어링이 말레이시아의 삼성SDI 제2공장 증설공사(1억8천300만달러) 등을 수주했다.

미국 외 국가까지 더하면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 중 계열사 물량이 100억달러를 넘어선다.

정부는 국내 건설사들이 미국 현지 공사 실적을 쌓아 향후 경쟁입찰 참여 조건을 충족할 수 있고, 향후 미국에서 경쟁력 있는 공사비 산출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제조사의 해외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공개 입찰보다는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순수한 해외건설 수주 실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부는 올해 해외건설 수주 목표를 지난해보다 50억달러 높인 400억달러로 잡았다.

2027년까지 해외건설 연간 수주 500억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4대 건설 강국에 진입한다는 게 목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이 300억달러를 넘었으나, 수주의 질이 좋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국내 건설사들이 정체한 수주능력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를 통한 지분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외 수주 방식을 선진화한다는 계획이다.

도급에서 투자개발 방식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공능력 평가 때 해외건설 고용에 가점을 주고 해외건설 근로자의 비과세 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