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동유럽 등 유럽 전역서 농민들 거리로
농가 지원 축소·까다로운 EU 환경 규제·수입 농산물에 '폭발'
불붙은 유럽의 '성난 농심'…극우세력 편승 움직임도
유럽 농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농가 소득은 점점 줄고, 친환경을 명분으로 한 각종 규제에 수입 농산물 유입까지 늘어나자 유럽 전역에서 농민들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

그 틈을 타 각국의 극우 세력이 지지세를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 프랑스·독일·폴란드 등 유럽 전역 농민 시위
프랑스에서는 18일(현지시간) 시작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에서 처음 시작된 트랙터 시위는 점점 범위를 넓혀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16번 고속도로까지 확대됐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수도권 전체를 봉쇄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23일 시위에 나선 여성 농민과 그 딸이 차 사고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농민들의 투쟁 수위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이날 프랑스 농민 일부는 노란 조끼와 노란 모자를 쓰고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몰려가기도 했다.

2018년 11월 노란 조끼 시위가 연상되는 모습이다.

독일에서도 한 달 가까이 곳곳에서 성난 농민들이 트랙터 시위를 벌이고 있고, 폴란드와 루마니아 농민들은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서 대치중이다.

폴란드 농민들은 이날도 전국 160여개 도로를 봉쇄했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에서도 '농민 봉기' 조짐이 보인다.

유럽 농민들의 경고는 이미 지난해 3월 네덜란드에서 표로 현실화했다.

신생 우익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지방선거에서 마르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자유민주당(VVD)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창당한 BBB는 질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가축 사육두수를 3분의 1가량 감축한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서 농심을 샀다.

불붙은 유럽의 '성난 농심'…극우세력 편승 움직임도
◇ 생계 부담에 과도한 EU 규제…우크라산 곡물 수입도 불만
유럽 농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진 터에 정부가 세금 지원마저 끊으려 하는 게 크다.

독일 정부는 농업용 경유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이번 연도 예산안이 헌법에 어긋나 무효라는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대대적 긴축이 불가피해지자 농업용 경유 보조금에 손을 대기로 했다.

농업 강국 프랑스의 농민들 역시 정부의 비(非)도로용 경유 면세 폐지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면세 혜택이 화석 연료인 경유 소비를 부추긴다며 폐지 방침을 밝혔다.

프랑스 농민들은 농산물이 정당한 값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불만도 크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가 소득은 지난 30년 동안 40% 줄었고, 농민 5명 중 1명은 빈곤선 아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보조금을 지원받으려면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라 경작지의 4%를 놀려야 한다.

농민들은 정부가 대안을 내놓지도 않으면서 특정 살충제 사용 금지라는 EU의 지침을 더 강화하려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본다.

유럽 최대의 농업협동조합·생산자 단체인 코파 코게카(COPA-COGECA)의 크리스티안 랑베르 회장은 "탈탄소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규제에 의한 괴롭힘"이라며 "EU의 그린 딜(Green Deal)과 관련된 결정은 파급 효과에 대한 연구 없이 내려졌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이 증가해 유럽산 농산물의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EU는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로가 전쟁으로 사실상 봉쇄되자 우크라이나 곡물이 폴란드 등 동유럽을 거쳐 아프리카, 중동 등으로 수출될 수 있게 지원했다.

그러나 애초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유럽 시장에 직접 유입되는 물량이 급증, 각국 시장 가격이 폭락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곡물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산 가금류, 달걀, 백설탕 등의 수입도 전쟁 전인 2021년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불붙은 유럽의 '성난 농심'…극우세력 편승 움직임도
◇ 극우세력, 6월 유럽선거 앞두고 농민 분노 편승
각국의 극우 정당은 이런 분노를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민들에 동조할 조짐이다.

이들은 고속도로 가에 교수대를 세우고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가 여객선에서 내리는 것을 막는 등 극렬 시위를 부추긴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농민 시위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지난 20일 지롱드 지방에서 농민들을 만나 "우리 농업의 죽음을 원하는 마크롱의 유럽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6월 초 유럽 선거를 앞두고 극우 세력의 지지세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3일 엑스(X·옛 트위터)에 "힘든 시기일수록 비례와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폭력과 위협은 민주주의에서 설 자리가 없다"며 농민 시위를 악용하려는 시도에 경고를 보냈다.

프랑스 정부 역시 RN의 지지율 상승을 예의주시하며 대통령과 정부 대변인, 가브리엘 아탈 총리 등이 나서 농민과 연대 의사를 표하며 총력을 다해 해결책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