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기에 앞서, 무엇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11월 이후 두달만에 올리는 글이네요. 여느때처럼 매달 새로운 글을 써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사실 올해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연주에서 연주될 오프닝곡으로 새 작품을 작곡해야 해서 온통 그 생각뿐이라 언어 능력도 많이 퇴화되어 두달에 한번씩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5월 한경arte필하모닉과의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까지 두 번 정도 쓸 기회가 남았기에, 이 기회들을 통해 브람스 4개의 교향곡에 대한 제 생각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아주 사적인 브람스①베토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1번 4악장
이번 글에서는 5월3일 예술의전당에서의 첫 연주에 선보일 브람스 교향곡 1번과 3번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왜 1,2/3,4순서대로 연주하지 않느냐고 궁금하실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분류인데요. 1번과 3번은 일단 표면적으로도 매우 비슷한 성격을 띄고있습니다. 영웅서사적이며, 두 작품 모두 알프스 산맥 등 대자연의 위엄을 표현하기도 하죠(1번의 4악장, 3번의 1악장). 또한 5월 3일 연주에선 3번 →1번 순서로 연주될 예정인데. 3번이 가장 멋진 오프닝을, 1번이 가장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기 때문입니다. 즉, 음악적 특징이 잘 어울리는 두 작품입니다.

2번과 4번도 앞의 두 교향곡보다는 비교적 여리고, 소박하고, 내면적인 둥 비슷한 특징도 있지만, 무엇보다 ㅡ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ㅡ 두 작품 모두 각각 전작의 성공을 토대로 수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작품들이기에, 음악적으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작곡적으로는 같은 성격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브람스 교향곡 1번에 대해 얘기하기 전, 19세기 작곡가에게 교향곡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과거 교향악 작품을 두어곡 작곡했고, 현재도 제 인생 최대 규모의 교향악 작품을 작곡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공감이 가는 의견입니다.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피아노곡 및 소품곡들과 교향곡들 및 대규모 작품들과의 괴리감 혹은 퀄리티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은 두 "장르"(소규모 작품 vs 교향악 작품)의 괴리감과 퀄리티 차이가 많이 났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베토벤이 너무 심하게 교향악의 끝을 미리 보아서 그렇다는 의견이 있죠.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오케스트라 작품은 대규모이기에 소규모 작품들에 비해 상상력과, 표현력의 한계가 있고, 공간과 시간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이 모든 요인으로 인해 오케스트라 작품은 소규모 작품처럼 100%의 악상과 아이디어를 모두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맞춰 더 많은 타협과 포기를 요합니다.

소품들과 교향악의 괴리감이 큰 작곡가로는 대표적으로 슈베르트, 슈만, 쇼팽이 있습니다. 쇼팽은 "피아노 작품의 정점을 도달했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은 영 형편 없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슈만도 그의 피아노 소품 등에는 정말 시대를 월등히 앞서가는 작곡 능력이 있었으나 교향곡은 그에 비해 시대에 조금 뒤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괴리감이 심한 작곡가인데요, 매우 낭만적이고, 서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당시 음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의 대표작들에(가곡, 피아노 소나타 등) 비해 교향곡들은 베토벤, 모짜르트의 아류정도로 취급받죠. 피아노 소나타만 보아도 "그냥 이 곡들 오케스트레이션만 해도 대박이었겠다" 드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드디어 그의 능력을 어느정도 뽐낸 마지막 교향곡(Große C-Dur)을 하나 완성하고, 제 개인적으로 가장 슈베르트스러운, 혹은 유일무이하게 슈베르트스러운 교향곡인 "미완성 교향곡"은 말그대로 완성조차 못하였죠. ①(물론 반대로 바그너, 리하르드 슈트라우스, 말러처럼 대규모 작품은 완성도가 뛰어난데 비해 피아노 작품은 뒤떨어지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이는 쇼팽과 리스트가 초기 낭만시대에 피아노곡의 최고점을 찍어서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베토벤 이후 수많은 작곡가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결국 한세기가 훌쩍 지나서야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같이 모든 "장르"를 괴리감 없이 최고의 퀄리티로 표현한 작곡가가 나타났습니다.)
브람스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활동하던 때보다 반세기도 더 이전의 베토벤의 교향곡들임에도 여전한 그들의 위상에 여러번 좌절하였으며, 이로 인해 첫번째 교향곡을 완성할때 까지 거의 14년이 소비되었죠.

수많은 좌절을 딛고 완성된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초연 직후 "베토벤 10번 교향곡이다"라는 찬사를 받으며(브람스는 반면 또 베토벤과 비교되는 것이 싫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곧바로 세기의 명작 반열에 올랐지만, 제가 감히 얘기드리자면 1번 교향곡은 마지막 4악장을 제외하고는 브람스의 본 실력의 반정도밖에 표현되지 못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브람스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작곡가라는 평가를 아마도 가장 많이 받기에, 절대적인 완성도는 1, 2, 3악장도 당연 최고!)

브람스의 작품들에 대해선 "후기 낭만주의 음악이다" 혹은 "아니다, 고음악과 고전주의의 부활이다" 라는 의견이 당대에도, 현재에도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놀드 쉔베르크가 말했던 "브람스는 가장 진보적인·혁신적인 작곡가였다" 라는 의견에 무조건 동의합니다.
후기낭만주의, 고음악, 고전주의 모든 평가를 다 받은 그 자체가 정말 혁신적이었다는 근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초기, 고음악·바로크 시기에는 음표 하나하나의 존재의 이유, 체계가 가장 중요했죠. 바흐 코랄, 인벤션, 푸가 등, 이 엄격한 체계들 속 최대한의 음악을 끌어내는것이 중점이었습니다. 한음 한음 모두 완벽해야했고 최소한의 예외만 허용되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최소한의 예외를 가장 잘 표현한 작곡가들이 후대에도 기억되고 있긴 합니다.) 이로 인해 매우 수평적인, 선율적인 음악이 추구되었습니다.

이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주의 시대에선 화성, 선율, 리듬이 모두 자유로워지며 큰 틀의 발전이 두드러졌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변화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넓은 시야를 추구하는 음악이 중심이었죠. 그와 함께 오케스트레이션도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음악은 고음악에 비해 수직적인 음악이 추구되었죠.
GettyImages
GettyImages
낭만주의 음악은 말 그대로 체계와 큰 그림보다는 순간의 감정, 감각과 표현력이 두드러집니다. 수직 수평을 넘나드는 마구잡이 곡선으로 표현할수 있겠네요.

수 세대를 거쳐 발전해온 모든 음악적 특징들을ㅡ즉, 철저한 체계와 감각, 수평과 수직, 아이디어과 표현력 등ㅡ 모두 완벽하게 혹은 완벽에 가깝게 조화시킨 유일무이한 작곡가가 브람스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브람스가 역사상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작곡가라는 평가에 뒷받침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의 1악장, 2악장, 3악장 모두 다른 브람스의 작품들에 비해 너무 수직적이고 큰 틀에만 집중적으로 중점을 둔, 브람스보다는 오히려 베토벤스러운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브람스 역량의 50%밖에 못 펼쳤다고 감히 생각하는 것이구요.

하지만(!) 4악장에서는, 마치 1,2,3악장은 습작이었나 싶을 만큼, 갑자기 모든 브람스의 최고의 장점들, 즉, 수없이 많은 작곡기법과 표현력의 조화가 정점에 도달합니다. 4악장은 광활한 대자연의 음악인 동시에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음악이기도 하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연상케하는 끊임없는 수평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수직적인 화성적 및 기법적 틀도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악기들이 연주하는 수많은 음들 중에 단 하나의 음도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4악장이야 말로 작곡가 브람스를 맘껏 뽐낸 첫 교향악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유의 귀에 꽂히는 멜로디덕에 당대 관객들이나 현재 관객들에게도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받아왔지만, 저의 의견으로 브람스가 드디어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도장을 찍은 첫 작품이 바로 1번 교향곡의 4악장입니다.

아주 사적인 브람스 ②초절정 선율은 단 한번, 인생을 닮은 3번 2악장 링크
https://www.arte.co.kr/music/theme/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