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죄책 이루 말할 수 없이 중해…마땅히 중형"
'압구정 롤스로이스' 1심 징역 20년…유족측 "뉘우침 없어"(종합)
향정신성 의약품에 취해 차를 몰다가 행인을 치어 사망케 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운전자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24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모(28)씨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검찰 구형도 징역 20년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고 주장하지만 목격자가 여럿 있었음에도 현장을 벗어나는 이유를 고지하지 않고 119 도착 전 임의로 이탈한 점을 보면 인정할 수 없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케타민 약물 영향으로 운전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무시했고 피해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사고를 당해 죄책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중하다"며 "범행 직후 증거인멸에 급급했으며 체포 과정에서도 피해자를 보며 웃는 등 비정상적인 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는 3달 이상 의식불명으로 버티다 사망해 피해자 가족의 상실감을 가늠하기 어려우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요즘 우리 사회에서 늘어나는 마약 투약으로 무고한 사람이 피해받을 수 있으므로 마땅히 중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족 측은 신씨가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거나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권나원 변호사는 이날 선고 후 "검찰의 구형이 조금 더 높았다면 조금 더 중한 형이 선고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신씨 등에 대해 추가 기소가 이뤄진다면 더 높은 형이 선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신씨 측은 결심공판 후 합의를 위해 만나자는 의사를 전하기는 했지만 만나지 않는 것으로 했다"며 "처음부터 신씨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혐의 인정을 요구했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있다' 정도였을 뿐 뉘우친다거나 하는 입장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부모님은 여전히 큰 상심에 처해 있어 재판 진행 상황을 듣는 것 자체를 괴로워하고 계신다"며 "재판에는 당분간 참석이 어렵지만 관심을 가져주신 국민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했다.

유족은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신씨는 지난해 8월 2일 오후 8시10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인근 도로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A씨(당시 27세)를 다치게 하고 구호 조치 없이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뇌사에 빠진 A씨가 지난해 11월 25일 끝내 사망함에 따라 신씨의 혐의는 도주치상에서 도주치사로 변경됐다.

신씨는 범행 당일 시술을 빙자해 인근 성형외과에서 미다졸람, 디아제팜 등 향정신성 의약품을 두 차례 투약하고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케타민을 포함해 모두 7종의 향정신성 의약품 성분이 검출됐다.

신씨에게 의료 목적이 아닌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처방하고 환자들을 성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40대 의사 염모씨는 경찰에 구속된 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