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를 접고 전두환의 제5공화국(1980~88)을 열었다.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의 열매인 국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민의 사회문화적 자유화 요구를 수용해 새로운 문화정책을 시도했다. 5공 시절의 주요문화예술 정책으로는 80년대 새 문화정책(1981), 지방문화중흥 5개년 계획(1983)을 통해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중요정책으로 삼았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1986) 건립에 이어 예술의 전당(1984~1993)이 건립되면서 지역문화 기반시설조성이 붐을 이뤄 ‘시민회관’에 이어 프로그램 없는 대관공간인 ‘예술의 전당’ 또는 ‘문화예술회관’이 전국에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문화정책은 ‘문화정체성 확립’과 ‘문화향수권 신장’ 그리고 ‘문화예술창작의 활성화’가 중점사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포츠 문화가 활성화되었던 시기로 1986년 아시아경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 개최하였으며 프로야구와 프로씨름 그리고 전국 컬러 TV방영 등 오락과 여가 산업 정책이 시행되면서 소위 3S의 시대와 함께 문화산업화의 토대를 닦았다.

6공화국의 시작점인 노태우 대통령(1988~93)은 ‘모두 국민에게 문화를’이라는 구호 아래 ‘문화발전 10개년 계획’(1990)과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문화부문(1992)을 발표하며 “복지, 조화, 민족, 개방“”을 근간으로 ‘새로운 문화정책 창출’, ‘문화 복지의 실현을 위한 실천 및 정착’, 그리고 ‘고도정보 산업 시대의 문화 예술 영역확보’와 문화 복지개념에 기초한 ‘국민문화 향수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 노태우 정부는 종래 정부의 국민 동원 및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던 문화정책을 국민의 문화향유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 ‘문화 복지’란 개념을 내세웠다. 또 정부는 탈권위주의와 탈관료주의를 표방하면서 문화정책을 엘리트 위주의 문화예술진흥정책에서 국민 생활 속에 뿌리내리도록 문화학교운동, 문화 가족 운동 등 문화확산 정책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다. 또 ‘대한민국예술원법’(1988), ‘도서관진흥법’(1991),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1992)을 제정하고 국립민속국악원, 한국예술종합학교(1992)를 설립했다. 또 지방문화원의 역할 정립, 향토문화특성화, 지역문화축제 개발 등 지역문화 창달 정책도 펼쳤다. 이중 노태우 정부의 가장 큰 문화예술정책의 성과는 문화부 신설(1990)일 것이다.
문화부가 문화정책의 축이 되고 문화기반시설을 확대하면서 정부의 각종 심의와 규제를 폐지하고 예술지원정책이 활성화된 시기다.
1972년 경복궁 경내에 건립된 국립중앙박물관 1992년 이후 국립민속박물관이 사용하고 있다
1972년 경복궁 경내에 건립된 국립중앙박물관 1992년 이후 국립민속박물관이 사용하고 있다
군부정권을 종식하고 민간정부가 정권을 이양받은 김영삼의 문민정부(1993~1998)는 ‘신한국창조’를 국정 목표로 ‘역사 바로 세우기’와 ‘세계화’를 주창하며 과거 군사문화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전 사회적으로 민주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상징적이면서 실질적인 문화정책을 이어갔다. 특히 물질과 정신의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는 진정한 국민복지를 실현하고자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문화복지 기본구상’을 통해 국민의 문화적 풍요와 그에 따른 높은 삶의 질을 실현하는 문화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또 ‘신한국 문화창달 5개년 계획’(1993)을 수립해 '선진문화 복지국가’를 ‘민족정기 확립’, ‘지역문화 활성화’,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문화를 산업적으로 생산, 유통, 소비하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국내 산업 활성화는 물론 세계화의 한 축으로 삼고자 했다.

이후 ‘문화와 함께 21세기를’(1995), ‘문화 복지 중장기 실천계획’(1996), 문화 비전 2000 (1997) 등이 수립되어 ‘말의 성찬’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화정책의 적극화, 체계화를 이루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1994년에는 문화산업이 본격 정책에 반영되어 문화부 내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되고 영상진흥기본법이 제정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지역문화축제가 급격히 늘었고 1996년 문화복지기획단이 구성되어 문화복지 개념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또 음반사전심의제 폐지로 확실한 창작의 자유를 구가하면서 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전향적으로 전환되었다.
1995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1995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국민의 정부(1998~2002)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문화예산 1% 달성이다. ‘지식정보’와 ‘문화산업’을 강조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정부 예산의 1%를 문화예산으로 편성했다. IMF에도 불구하고 ‘문화산업은 21세기 기간산업’이라 공포하고 문민정부의 문화산업론을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또 당시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시행한 일본문화대개방(1998)은 오늘의 K-문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된 동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문화부를 문화관광부로 개칭 (1998)하고, 문화산업발전 5개년계획(1999)을 수립하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1999), 게임산업개발원(1999), 영화진흥위원회(2000), 콘텐츠코리아 비전21(2002)을 수립 추진하며 문화산업을 강조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한 이윤추구라는 틀에 문화를 가두어 공공재로서의 문화적 속성이 훼손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예산의 뒷받침을 통해 지역문화회관과 창작스튜디오 등 창작 인프라까지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성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재)한국문화정책개발원(1994)와 (재) 한국관광연구원(1996)을 통폐합해 (재)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2002)을 발족하고 한국게임산업개발원(1999)을 설립했다. 이와 함께 방송영상진흥원을 새롭게 개편하고, 문화관광부 안에 문화콘텐츠진흥과를 신설하고 이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2001)을 세웠다. 또 문화재관리국도 문화재청(1999)으로 승격했다.

참여정부(2003~08)는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네 번째 정부로 노무현 정부의 별칭이다. 참여정부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에 따른 ‘창의한국’를 표방하며 문화 민주주의의 확대와 지역문화 활성화를 도모하는 국가균형발전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정책을 활용했다. 콘텐츠산업이 강화되고 공공디자인정책, 문화예술교육과 장애인 등 사회취약 계층의 지원을 강화했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2005)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2006)되었다. 또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문화 나눔 사업이 시행되었고,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예술진흥원을 민간자율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개편(2005)했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며 선거 당시(2002) 공약했던 광주문화수도를 위해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추진단을 신설(2007)해 사업을 시작했다.(2008) 이와 함께 ‘문화접대비’ 제도가 시행(2007)되었다. 주5 일제가 실시되면서(2004), 여가가 늘어나고 이는 공연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참여정부는 국가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문화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 예총 소속의 120만 명 예술인들은 지난 독재정권, 군사정권에 기생해 부와 명예를 누린 이들로 분류되면서 현장 예술가들을 둘로 나눴다. 이후 기존 예술가와 행정가를 이원화해 예술가들이 직접 예술정책과 행정, 지원을 통제함으로써 실제 문화 관련 기관이나 시설의 운영이 일부 파행적으로 이루어졌다. 기금의 심의도 특정 진영 예술가들이 맡아 실제로 지원금을 독식하거나 끼리끼리 나누었다는 비판과 당시 문화예술기관의 기관장과 소속원교체 또는 축출은 소위 ‘블랙리스트’의 원조로 지적받기도 한다.

이와 함께 문화정책 수립에도 소위 “권한은 있지만, 책임은 없는” 일반인들로 구성된 100여개의 테스크 포스 (TF, Task Force)에서 문화정책을 양산했다. 문화부가 코디네이터가 되어 이들을 뒷바라지하면서 탄생한 것이 <창의한국-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2004)과 <새 예술정책-예술의 힘>(2004)이다. 문화부 공무원들이 배제되고 일반인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았지만, 재정이나 제도의 구체적 뒷받침이 없는, 아이디어의 집대성에 불과하단 평가를 받았다. 이후 문화정책은 신조어 또는 말의 성찬으로 그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2004년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자료집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예술의 힘 표지 (총 654페이지)
2004년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자료집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예술의 힘 표지 (총 654페이지)
연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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