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있는 라이브 드럼 연주가 특징…이달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독립운동가 앨리스 현에게 진짜 모습을 묻다…연극 '아들에게'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한국인,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고, 외국어에 능해 해방 이후 남한 미군정과 북한 정부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여성….
앨리스 현(한국 이름 현미옥·1903∼1956?)은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면적인 생애를 보낸 인물이다.

반면 현미옥에 관한 기록은 그를 단편적인 인물로 묘사할 뿐이었다.

한국 근현대사는 그를 이중 첩자에 비유해 '한국판 마타 하리'로 불렀고, 북한은 그를 '박헌영의 첫번째 애인'이자 미국의 스파이로 간주해 숙청했다.

현미옥은 극단 미인의 신작 연극 '아들에게' 무대에 올라 "기자들이 (자신에 관해) 쓰는 소설이 지겹다"고 말한다.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직접 전하려는 그에게 170분이라는 시간은 그의 삶을 다 담기에도,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는데도 부족해 보였다.

독립운동가 앨리스 현에게 진짜 모습을 묻다…연극 '아들에게'
'아들에게'는 1953년 현미옥이 북한 요원에 의해 바다에 던져진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서 깨어나며 시작한다.

현미옥은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박 기자를 만나 지나간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연극은 인터뷰 형식을 빌려 미옥의 삶을 꼼꼼하게 담아낸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현순 목사와 정치에 관해 토론을 나누는 장면, 공산주의 진영을 이끄는 박헌영과의 묘한 관계 등이 펼쳐진다.

현미옥은 당시 "혁명만큼 중요했던 연애 사업"이 그에게 남긴 상처를 담담히 털어놓기도 한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사귀었던 연인과 결혼해 딸과 아들을 가졌으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뱃속의 아들과 함께 집을 떠난다.

'아들에게'는 어머니 현미옥이 자신만큼 기구한 삶을 살았던 아들 웰링턴에게 자신을 변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현미옥은 아들이 성인으로 자라난 뒤에야 처음 자식과 만나 용서를 구한다.

작품은 여태껏 모든 선택에 떳떳했던 현미옥이 아들을 마주해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으로 채워지지 않는 고독과 외로움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배척당한 그가 아들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하는 대사는 평생 진정한 동지를 찾고자 했던 주인공의 마음을 압축해 전달한다.

독립운동가 앨리스 현에게 진짜 모습을 묻다…연극 '아들에게'
연출 면에서는 조명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개인의 내면을 묘사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3·1운동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강렬한 에너지는 한 줄기 조명과 함께 이야기하고,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해방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허탈함은 검은 불길이 치솟는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표현한다.

라이브 드럼 연주로 속도감을 불어넣은 점도 눈에 띄었다.

드럼 연주는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쉴 새 없이 외국을 누볐던 주인공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며 극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다만 배우들의 에너지가 과하게 느껴지는 대목은 아쉬움을 남겼다.

드럼 연주가 크게 울리는 동시에 배우들도 함께 소리치는 장면이 반복되자 대사의 호소력이 약해지고 단조로운 인상을 줬다.

독립운동가 앨리스 현에게 진짜 모습을 묻다…연극 '아들에게'
'구두리'라는 필명을 쓰는 김수희 작가가 극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3년 전 '미옥, 앨리스 현'이라는 이름으로 낭독 공연을 거쳤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어 정식 무대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연극은 이달 2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계속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