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들, 이선과 진연

뮤지컬은 유독 ‘꿈꾸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그래서 뮤지컬은 꿈이 없다면 온전한 미래도 없을 것이며 꿈을 꿀 수 없다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자주 담는다. 하지만 이것이 뮤지컬을 단순하거나 얄팍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꿈을 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박천휴와 윌 애론슨 콤비의 신작 <일 테노레>도 ‘꿈’에 대한 뮤지컬이다. 배경은 일제강점기고 주인공은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윤이선이다. 윤이선의 실제 모델은 1948년 <라 트라비아타>로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올린 테너 이인선(1907~1960)이다. 1951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오디션에 동양인 최초로 합격한 실제 ‘조선 최초의 테너’다. 모든 행보에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개척자를 다뤄서일까? 뮤지컬의 제목도 ‘일 테노레(Il Tenore)’, 즉 ‘테너(The Tenor)’다.
ⓒ 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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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그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일 테노레>는 조선 최초의 테너를 위인으로 상찬하는 작품이 아니다. 뮤지컬은 이인선에게서 의학도, 오페라, 조선 최초의 테너,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오디션 합격과 같은 키워드만 가져온다. 그리고 주인공 이선을 오히려 ‘너드(nerd)’로 만든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깊이 몰두하느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너드라 하는데, 이선이 딱 그렇다. 그는 연희전문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의학도로서 항일운동 모임인 문학회 활동에 흥미를 느끼지만 일원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어리숙하다. 찌질하고 바보 같지만 한편으론 귀엽다.

모든 건 그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이선은 우연히 이화여전 여학생이 부르던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다. 처음 들어본 오페라 음악은 이선을 사로잡는다. 이선에게 그것은 평범한 레슨 소리가 아니라 환희 그 자체로 ‘들린다.’ 관객도 리벌브(reverb)가 걸린 소리를 통해 이선의 환희를 듣는다. 이선은 곧 의학을 포기하고 진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에게 의학 공부는 항일운동을 하다 갑자기 죽은 형을 대신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선은 이제 가족이 아닌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오페라는 매우 두렵지만 너무나 간절한 꿈이 된다. 그리고 그 꿈은 문학회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구체화된다. 오페라 제목도 ‘꿈꾸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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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 이선은 문학회의 여성 리더 진연을 만난다. 진연 역시 꿈꾸는 사람이다. 진연이의 꿈은 문학과 연극으로 항일운동을 ‘하는 것’이다. 진연은 거침이 없고 단호하며 빠른 추진력을 가졌다. 전체를 통솔할 줄 알며 계획을 구체화하는 데 빈틈이 없다. 진연은 조선의 독립을 간접적으로 발언하는 오페라 ‘꿈꾸는 자들’을 문학회에서 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오페라 공연을 실현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을 이선과 함께 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페라라는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하며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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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고 확신에 찬

이선은 노래하며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뉴욕의 어느 집에서 오페라를 하는 테너로 살며 진연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이선은 죽을 때까지 이 꿈을 놓지 않는다. 그의 꿈은 노년에도 문학회 일원들과 오페라를 준비하던 시절과 똑같이 간절하다. 그 시절 이선은 너무나 간절했고 진연은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기에, 이선의 그 다음 꿈은 끝까지 꿈으로만 남는다. 그들은 같은 꿈을 꿨지만 행동은 달랐다. 그래서 진연은 이선에게 나비넥타이를 매주며 영감을 주던 청춘의 모습으로 남아, 이선의 평생의 꿈이 된다. 이선의 두 번째 꿈은 이선을 끝까지 ‘꿈꾸는 자’로 살게 한다. 첫 번째 꿈은 이미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뮤지컬이 꿈을 담아내는 방식은 언제나 그 이상과 너머를 바라보게 만든다.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일 테노레>는 극중극 오페라 ‘꿈꾸는 자들’에 이선과 진연의 이야기를 중의적으로 담아 극중극과 극 밖의 극 경계를 흐리고 연결시킨다. 이선은 ‘꿈꾸는 자들’에서 안토니오가 되어 나탈리아에게 노래하지만 그 노래는 진연을 향한 이선의 평생의 꿈이 되어 두 사람의 청춘을 파노라마처럼 담는다. 그들의 청춘은 엄혹한 시대 아래 끝없이 시리고 끝없이 아름답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홀로 살아가는 남성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여성을 일종의 공식처럼 담아내는 윌과 휴의 뮤지컬은 정서적으로 강한 여운을 만들며 객석을 사로잡는다. 이제, 그들의 다음 작품을 또 다시 꿈꾸는 시간으로 돌입한다.
ⓒ 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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