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는 성폭력이나 성추행 등을 겪은 여성들이 해시태그 "#MeToo"를 사용해 자신의 경험을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운동이며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미투(#MeToo)와 함께 성범죄 저항운동 연대의 상징이 된 그림이 있다. 바로 최초의 "미투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탈리아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6)의 대표작품들이다. 아르테미시아는 1611년 서양미술사상 최초로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고발하고 7개월간 법정 공방 끝에 승소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욱 놀랍게도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성폭력의 상처를 딛고 당대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전이나 이후에 어떤 여성도 그리지 않은 화법을 구현한 천재적 화가"라는 찬사를 보냈다. 아르테미시아가 17세에 그린 이 그림은 세계미술사에서 최초로 여성적 관점에서 성범죄를 묘사한 작품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림의 주제는 구약성서 <다니엘 서(書)>에 나오는 ‘수잔나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성서에 의하면 두명의 늙은 장로들이 요아킴의 아내인 아름다운 수잔나를 성폭행하려다가 거부당하자 음모를 꾸민다. 수잔나를 간음죄로 고발하고 불륜을 저질렀다는 허위 진술도 했다. 수잔나는 법정에서 사형 선고 판결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누명을 벗게 된다. 이 그림은 여름날 정원에서 수잔나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던 두 노인이 성폭행을 시도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노인들은 수잔나를 협박하며 성행위를 강요하지만 그녀는 몸동작으로 완강하게 거부를 하고 있다. 수치심으로 붉어진 수잔나의 얼굴과 손동작이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하고 있다.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느끼는 모멸감과 심리적 고통이 표현된 이 그림에 대해 미국의 미술사학자 메리 가라드는 "성적 행위의 강요를 묘사한 최초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예술사의 혁신을 나타낸다"라고 평가했다.
Susanna_and_the_Elders_(1610),_Artemisia_Gentileschi
Susanna_and_the_Elders_(1610),_Artemisia_Gentileschi
다음 그림은 아르테미시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며 내용은 구약성서 제 2경전 유디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유대의 산악도시 베툴리아에 살았던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가 지휘하는 아시리아 군대가 조국을 침략하자 적장을 유혹해 칼로 목을 베어 민족을 구한 여성 영웅이다. 아르테미시아는 유디트의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인 홀로페르네스가 침대에서 살해되는 장면을 그림에 옮겼다. 유디트는 왼손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카락을 웅켜쥐고 오른손에 칼자루를 쥐고 적장의 목을 무자비하게 자르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가 침대보를 흥건히 적시며 천의 주름을 따라 흘러내린다.

잔혹한 살인 장면을 빛과 어둠의 대비가 특징인 테네브리즘 기법을 사용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동시대 남성 화가들이 그렸던 동일한 주제의 그림들과 큰 차이점이 있다. 남성 화가들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요부로 등장하거나 그의 잘린 머리를 가지고 탈출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녀는 잘린 머리를 수습하기 위해 기다리는 늙은 여성으로 묘사됐다. 아르테미시아는 미술의 관습을 깨고 두 여성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유디트는 남성의 폭력성을 응징하는 여성 전사, 젊은 하녀는 살인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공범자로 묘사했다. 즉 성차별주의적 권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강인함과 연대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Artemisia_Gentileschi_-_Judith_Beheading_Holofernes_-_WGA8563
Artemisia_Gentileschi_-_Judith_Beheading_Holofernes_-_WGA8563
학자들은 남성에 대한 복수심과 처벌의 감정이 두 여성의 모습에 투영됐다고 해석한다. 아르테미시아는 18세에 아버지 오라치오와 함께 성폭행 가해자인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벌인 과정에서 고통을 당하고 수모를 겪었다. 당시 관례에 따라 처녀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산파에게서 부인과 검사를 받았다.

또 17세기 거짓말 탐지기에 해당되는 '시빌레'라는 고문도 당했다. 그녀가 법정에서 심문을 받았던 과정에서 겪었던 굴욕과 모멸감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성폭행 사건은 그녀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줬지만 법정에서 승소한 강인한 의지와 용기는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아르테미시아는 여성 최초로 1616년 피렌체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직업화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 유럽 최고 권력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하여 국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1653년 사망한 이후 미술사와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여성미술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작품성과 미술사적 업적을 재평가받았다. 2020년 영국내셔널 갤러리는 국립미술관 역사상 최초로 여성화가의 개인전을 개최하는 영광을 아르테미시아에게 부여했다. 성폭행 사건을 극복한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용기, 천부적 재능과 열정, 독립성과 업적 등이 작가 선정 기준에 반영되었다. 이를 통해 아르테미시아는 위대한 여성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하고 페미니즘의 선구자로서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