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만 총통
“국민당 반동파의 두목이자 중국 인민의 공적.” 1975년 장제스(蔣介石)가 사망했을 때 중국 관영 신화사가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붙인 수식어다. 중국 공산당 1인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라이벌에 대한 평가이니 야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만 선거 때마다 그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국민당 후보의 당선을 중국이 지지하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장제스는 난징의 국민정부 시절부터 대만으로 옮긴 후 사망할 때까지 제1~5대 총통을 지내며 장기 집권했다. 총통(總統)이란 말은 청나라 말기 영어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번역한 것에서 유래해 지금도 중국에서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총통으로 표기한다.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 총통’이지만 ‘대만 총통’ ‘타이완 총통’이라고도 부른다. 대륙에서는 중화민국(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타이완 지구 영도인’이라고 한다.

대만 총통은 1946년 제정된 중화민국 헌법에 따라 당초 국민대회에서 선출했다. 일종의 간접선거였다. 임기 6년으로 연임만 가능했다. 그 뒤 장제스는 공산당의 거센 위협을 빌미로 비상조치를 발동, 총통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꿨다. 하지만 1987년 대만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직접선거로 총통을 선출하고 있다. 임기도 4년으로 줄었으며, 3선 이상은 불가능하다.

오늘 대만의 향후 4년을 좌우할 총통과 113명의 입법의원을 뽑는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친미 성향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와 친중을 앞세운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중 누가 승리할지 모르는 박빙이다. 사실상 일당 체제로 총통을 독식하던 국민당은 2000년 천수이볜의 민진당에 처음으로 8년간 정권을 내줬다. 그 후 2016년과 2020년 다시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에게 연속으로 패했다. 정권 탈환을 다짐하는 국민당이지만 중국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미·중 갈등,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와 맞물려 우리로서도 선거 결과에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