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관련 조형물이 설치된 맹방해변의 모습 /사진=빅히트 뮤직, 한경DB
그룹 방탄소년단 관련 조형물이 설치된 맹방해변의 모습 /사진=빅히트 뮤직, 한경DB
2021년 강원 삼척시 맹방해변에는 화려한 오렌지색 파라솔과 파란색 선베드가 여러 개 들어섰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앨범 콘셉트 포토에 등장한 해수욕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낸 이 장소는 약 2년간 국내외 팬들의 '성지 순례지'로 사랑받았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BTS 앨범 재킷 촬영지'라는 안내 팻말이 설치돼 있고, 해수욕장에 도착하면 'BTS' 문구로 만들어진 커다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방문객들이 선베드에 누워 멤버들의 포즈를 따라 하는 등 인증샷 성지로 급부상하며 'BTS 홍보 효과'를 제대로 누렸다. 2년 전 맹방해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기사는 기자에게 "구경거리가 많지 않은 곳이라 조용히 캠핑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포토존이 생기고 사진을 찍기 위해 들리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던 바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당 명소를 볼 수 없게 됐다. 앨범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똑같이 구현한 포토존부터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서체까지 사용한 이곳이 알고 보니 가수 측의 허가 없이 조성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의 IP(지식재산권)가 무단으로 사용됐다는 이유로 조형물의 철거를 요구했다. 삼척시는 뒤늦게 소속사 측과 협의를 시도했지만 불발돼 촬영지였다는 걸 알리는 표시 외에 다른 설치물을 전부 철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관광객이 몰리는데 이렇게까지 철퇴를 놓아야 하냐고 지적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K팝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아티스트 IP는 엔터 산업의 더없이 중요한 핵심 자산이 됐고, 그 가치를 오롯이 지켜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K팝 가수에 대한 소비 가치가 커진 가운데 초상권·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느슨하게 대응하면 피해 사례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고 짚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소비가 일시적, 단발적으로 이뤄지는 방송·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와 달리 인적 자원인 K팝 아티스트 IP는 회사에서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두 가지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기준이 모호해져 결국 관리가 어려워진다. 특히 요즘엔 엔터 내 IP를 활용한 사업군이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졌기 때문에 외부에서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사례에는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각 엔터에서는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간접 참여형 매출 증대 전략을 고심해 왔다. IP를 2차 가공해 웹툰, 소설, 게임 등으로 만들고 아티스트 상품(MD)을 기획·제작해 판매하는 플랫폼까지 내재화했다. 하이브만 두고 봐도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음악을 제작하는 레이블 외에도 하이브 아이엠(게임), 수퍼톤(AI 음성), 위버스컴퍼니(팬 커뮤니티·커머스 플랫폼)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지식재산권 침해 사례에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는 지난 분기보고서에서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 등 아티스트 IP 기반 공식 상품, 콘텐츠 등 사업을 광범위하게 영위하고 있는바 상품군별 상표권 취득 및 주요 제품군에 대한 디자인권 등 국내 및 해외에서의 지식재산권 등록 및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다각적으로 지식재산권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군 위문편지 앱 '더캠프' 운영사 측에 방탄소년단의 초상과 성명 등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경고했다. 입대한 훈련병에게 인터넷 위문편지를 보낼 수 있는 해당 서비스에서 멤버 개별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오피셜(Official)'이라는 단어를 붙였으며, 커머스 채널에서 방탄소년단 멤버의 실명을 사용한 명찰 등을 판매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하이브는 팬 플랫폼 위버스, 커머스 플랫폼 위버스샵을 운영하고 있어 더욱더 강하게 경고했다. 위버스는 지난해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1000만을 돌파했고, 위버스샵은 1830만개 이상의 MD 판매고를 올린 하이브의 핵심 사업군이다. 이에 하이브는 '더캠프' 사례에 엄중히 경고하며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인 우리의 퍼블리시티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다만 상업적 이용과 달리 지자체 홍보 등이 가능한 경우에 대해서는 양측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긍정적인 결과물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방탄소년단이 서울 일대에서 데뷔 10주년 기념 페스타를 진행하고, NCT 127이 뮤직비디오를 경복궁, 청계천, 여의도 등에서 찍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바다.

한 관계자는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현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단 모든 건 사전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아티스트 초상권 및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인식도 같이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