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국회서 대야 소통 부재로 '개혁' 대통령령·법안 통과 가능성 불투명
취임 3주간 물가 전년 대비 200% '폭등'…전기세·가스세는 300% 이상 인상 예정
[르포] 밀레이 취임 한달…지지부진 개혁·천정부지 물가 "갈수록 악화"
"취임 한 달이 아니라 몇 년은 지난 것 같다.

새 정권 전에도 경제가 좋지는 않았지만, 폭등하는 물가에 식료품 구입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니 매우 우울하다.

"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산층 거주지의 대형마트에서 기자가 만난 에리카(36)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취임 한 달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제 부에노스아이레스시의 12월 월간 물가가 고작 21%(전년 대비 198%) 올랐다는 발표가 있었다"며 "음료수며 휴지며 300% 이상 올랐는데, 도대체 통계를 어떻게 내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취임 한 달을 맞는다.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유세 중 전기톱을 흔들면서 정부의 무분별한 지출을 잘라내고 기성 정치인들을 다 몰아내 100년 전의 번영을 되찾을 것이라고 공약했다.

국민들 기대에 예상을 꺾고 결선에서 55.6%를 득표하면서 '아르헨티나호'를 이끌 선장이 됐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자신이 공언한 '경제 개혁'을 밀어붙였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 개선 차원에서 페소화를 50% 급격히 평가절하했다.

또 총 366개의 규제 철폐를 한꺼번에 모아서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했고 총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급격한 평가 절하와 각종 규제 완화는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기본 식자재서부터 생필품인 휴지, 개인 위생용품, 전자제품 등 가격이 100% 이상 상승했다.

300∼600% 이상 오른 품목도 있다.

이러다 보니 구매력이 가장 왕성한 지난해 12월에는 소비가 13.5%나 하락했다.

취임 3주간 폭등한 물가로 2023년 물가상승률은 200%를 상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조금 삭감을 예고한 전기세 및 가스세는 3월까지 300% 이상 오를 것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수 백개에 이르는 법 폐지 및 개정은 위헌 논란을 일으키면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국회 권한인 일부 입법권까지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있어 여소야대 상황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또한 각 지자체, 노조, 시민단체에서 사법부에 헌법소원, 가처분 등을 신청한 상태이며, 일부 법원은 노조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시행 중인 대통령령 노동 개혁 부분은 시행 중지 상태여서 '밀레이판 개혁' 작업도 지지부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밀레이 대통령은 "협상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밀어붙인다는 입장이지만, 개혁 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방법이나 속도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밀레이 취임 한 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은 거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50대 루이사는 기자에게 "변화를 위해서 밀레이 정권이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재 경제 상황은 너무 어렵고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한다.

마트에서 요거트 하나를 살 때도 고심해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며 "야당과의 소통 부재로 국정운영이 가능할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에스테반(41)은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갈수록 나빠질 거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경제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안 믿는다"며 가격을 시장에 내맡긴 밀레이 정부를 맹비난했다.

택시 기사로 일하는 마리아(47)는 "휘발유 가격이 90% 이상 올랐고 누구나 다 맘대로 가격을 올리는데 왜 택시 요금은 못 올리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다음 달에 이사해야 하는데 월세는 385% 이상 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라고 한숨지었다.

반면 60대 중반 마벨은 "난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를 지지했고 결선에선 어쩔 수 없이 밀레이에게 표를 줬는데 취임 이후 밀레이가 보여준 개혁 의지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며 "그는 이미 취임사에서 몇개월 간은 힘든 시간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고 이 기간을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밀레이 지지 의사를 피력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12월 월간 물가상승률은 45% 정도 전망했는데 30% 정도라니 정말 좋은 수치"라고 말해 취임 이후 추진해 온 정책 방향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밀레이 정부 또한 자유경제 하에 수요와 공급 논리로 가격은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며,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이 국회를 통과돼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개혁이 이뤄지면 해외 투자 유치 등으로 물가는 안정화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이 보여준 '독불장군'식 과격한 개혁 추진 방식과 대야(對野) 소통 부재가 결국 국정 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걸로 보인다.

오는 24일 아르헨티나 노조총연맹(CGT)이 전국적 총파업과 동시에 백만명 규모의 시위를 예고했지만, 밀레이 정부는 "협상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해 노동계와 충돌 전선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