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테트리스] 푸틴 '신뢰도 80%'라는데…붉은광장의 민심은
올해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이벤트를 꼽는다면 단연 3월 대통령 선거다.

이번 대선의 관심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하느냐의 여부다.

러시아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푸틴 대통령은 4차례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는데 득표율은 2000년 첫 대선에서 53%였다가 가장 최근인 2018년엔 78%의 표를 쓸어 담았다.

모스크바 현지의 분위기는 3월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가 아니라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인 듯하다.

이번 임기에서 최대 사건이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이 만 2년 지난 시점에서 대선은 그에 대한 평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전 국민 설문조사'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 12월2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신뢰도가 80%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2023년 마지막 주말 민심을 듣기 위해 모스크바 붉은광장으로 나섰다.

[모스크바 테트리스] 푸틴 '신뢰도 80%'라는데…붉은광장의 민심은
외국 기자의 접근에 대답을 꺼리는 모스크바 시민도 있었지만 흔쾌히 응한 이들도 있었는데 우연인지 모두 푸틴 대통령의 지지자였다.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맡는 걸 생각해본 적 없어요.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친구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왔다는 나탈리아(46)가 그중 하나였다.

그는 "푸틴 이후의 대통령도 푸틴과 같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나탈리아는 푸틴 대통령 직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1991∼1999년 재임)을 '보드카 마시는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푸틴은 자기 말을 하고 나이에 비해 꽤 활동적인 전략가"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집무실인 크렘린궁과 맞닿아 있는 붉은광장 앞에는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피켓, 깃발을 든 사람도 종종 등장한다.

붉은광장 옆 굼 백화점 1층에는 푸틴 대통령의 지지 서명을 받는 부스도 설치돼 있다.

이 부스를 지키는 파벨(29)은 "지금 우리 상황은 간단치 않다.

폭풍우 속에서 선장을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당선을 당연시했다.

백화점 벤치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는 답을 거부하려다 '푸틴 대통령'이라는 말을 꺼내자 "74년을 살면서 그보다 더 나은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고 큰 소리로 답했다.

푸틴 대통령을 '영웅'으로 칭하는 시민도 발견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 테트리스] 푸틴 '신뢰도 80%'라는데…붉은광장의 민심은
붉은광장에서 '신뢰도 80%'는 사실일 수 있겠다고도 생각됐지만 광장이 아닌 전화를 통한 익명 인터뷰에선 결이 다소 다른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대선에 투표한다는 리나(20·가명)는 "특별군사작전은 말도 안 된다.

반대한다"면서 푸틴 대통령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한 40대 여성은 "이번 대선에서는 푸틴이 승리하겠지만 그의 시대가 끝나면 진보적 생각을 가진 30∼40대 젊은이가 대통령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매직원 이리나(46)는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결정된 것일 테지만, 나는 정치인이 아니어서 왜 특별군사작전이 필요했는지는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은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인의 형제가 돈을 벌기 위해 자원입대했다면서 "그의 가족은 연말연시를 불안, 기도, 눈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특별군사작전'은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동시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모스크바 테트리스] 푸틴 '신뢰도 80%'라는데…붉은광장의 민심은
한 30대 남성은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해 '불가피'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특별군사작전 등 푸틴 대통령의 정책을 모두 지지하지는 않지만 대안이 없다면서 "그가 100%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르'(황제)라는 말로 푸틴 대통령을 설명한 한 20세 남자 대학생은 "매년 새로운 독립 후보에 대한 선택의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좁아지고 있다"며 '포스트 푸틴'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극단주의 활동 등 혐의로 30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것처럼 비판·대안 세력의 부상이 쉽지 않은 정치 환경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통상부 장관 등을 차기 대권 주자로 꼽았지만 이들은 모두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다.

은퇴한 의사 안토니나(68)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모든 노인은 푸틴을 지지한다"며 "푸틴은 적어도 한 번 더 임기를 지내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비원인 알렉산드르(47)는 푸틴이 아닌 대통령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푸틴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다른 사람들도 학교와 직장에서 똑같은 말을 듣기 때문에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테트리스] 푸틴 '신뢰도 80%'라는데…붉은광장의 민심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