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가을, 나는 30여 종 꽃씨 모둠을 사서 화분에 심었다. 씨앗 크기가 아주 작았기에 파종 후 물도 조심조심 주며 싹이 트길 기다린 지 몇 주가 지나자 푸른 싹으로 화분이 가득 찼다. 개중에는 눈에 띄게 쑥쑥 자라는 식물이 있어서, '이 풀은 자라서 어떤 꽃을 피울까'하는 기대에 차 있었다. 얼마 지나 풀은 본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정체는 강아지풀이었다. 식물에 대한 나의 무지를 탓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나는 강아지풀을 쑥 뽑아서 계단 아래로 던졌다.

스무 살 여름방학, 나는 공부를 위해 문학잡지 영인본 한 박스를 안고 절에 들어갔다. 약 3개월 가까이 절밥을 얻어먹으며 정작 글은 읽지 않고 고추 농사와 마당 쓸기에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비 내린 다음 날, 아침 공양을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님과 함께 법당 앞마당에 삐죽이 올라온 잡초들을 뽑을 때였다. "잡초도 생명인데 이 잡초를 뽑을 때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냐"는 나의 물음에 스님은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이 풀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기에 뽑는다"고 했다. 자연을 아끼되 있을 자리가 아닌 것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 그것은 비단 식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공생을 유지하는 기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 낳은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자연이 가차 없이 그 대가를 되돌려주는 것처럼.

내가 계단 아래로 던진 강아지풀은 어느새 꺾였던 목을 세우고 뿌리에 조금 남아있던 흙을 기초로 몸을 일으켜 계단 틈새에 자리 잡았다. 그 생명의 치열함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강아지풀과 나의 공생은 앞으로도 여기 계단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겨울이 왔다.
The Journey (Traveling Plants), 2023 ⓒYuichi Hirako
The Journey (Traveling Plants), 2023 ⓒYuichi Hirako
유이치 히라코(Yuichi Hirako, b.1982)의 작품 < The Journey, 2023 >은 세로 3.3m에 가로 2.5m인 4점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어진 약 10m의 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일관된 주제를 담고 있지만 4점이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편으론 4폭의 화면을 한 작품으로 여기기에 시각적 연결고리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작품이 카툰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첫 번째 그림은 여러 씨앗의 모습을 담았다. 식물은 자신의 지속 가능과 영역확장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다. 물 위를 잘 떠다닐 수 있도록 배 모양의 형태를 갖춘 씨앗, 동물의 털 등에 잘 옮겨붙어 이동할 수 있도록 침이나 갈퀴 모양으로 진화한 씨앗, 이외에도 깃털이나 날개 형태로 바람을 통한 이동이 쉬운 씨앗, 동물의 먹이가 되어 영역을 확장하는 씨앗 등 다양한 씨앗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여행을 준비한 그들은 이번 생에 맡은 소임을 위해 각자의 여행을 떠난다.

두 번째 그림에는 두 개의 큰 산이 보인다. 산의 경계는 붉은색, 푸른색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인간이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수없이 나누어 왔던 경계와 다르게 식물의 이동은 어디든 자유롭고 우연적이다.

세 번째 그림에는 캠핑하는 트리맨의 모습을 통해 여행의 중간, 정착지를 찾기 위해 잠시 머무는 시간을 보여준다. 이는 인생이란 여행 중간에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네 번째 그림에는 일본 도심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배설물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는 찌르레기를 그린 그림이다. 이들은 인간들에겐 불편한 존재이지만 식물의 여행을 돕는 훌륭한 조력자 중 하나이다. 또한 샤머니즘에서 신목(神木)에 앉은 새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使者)로 간주하기도 한다.
Green Master 84, 2023 ⓒYuichi Hirako
Green Master 84, 2023 ⓒYuichi Hirako
Green Master 85, 2023 ⓒYuichi Hirako
Green Master 85, 2023 ⓒYuichi Hirako
찌르레기와 마찬가지로 유이치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와 개는 인간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존재이자 둘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트리맨에 안겨있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귀여워 보이는가? 우리의 사랑스러운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 원령공주)’에서 자연을 수호하기 위해 모여든 멧돼지 무리나 늑대처럼 나무 투구를 쓴 트리맨을 도와 공생을 방해하는 우리를 향해 감춰둔 이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동물의 세계에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거칠게 구분할 때는 눈이 붙은 자리를 통해 판단한다. 육식동물은 사냥을 위해 눈이 정면을 향해 있어서 상대와의 거리 측정에 용이하고, 초식동물의 눈은 포식자가 다가오는지 사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얼굴의 양측면에 자리한다. 트리맨은 눈이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의 눈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그가 정면을 향해 눈을 뜨는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Lost in Thought 92, 2022 ⓒYuichi Hirako
Lost in Thought 92, 2022 ⓒYuichi Hirako
Lost in Thought 64, 2021 ⓒYuichi Hirako
Lost in Thought 64, 2021 ⓒYuichi Hirako
식물은 자신들의 종족 보존을 위해 물에서 뭍으로 옮겨오며 끊임없이 진화했다. < Lost in Thought 92, 2022 >에서 보듯 우리 역시 미래는 모른 채 겨우 코앞만을 비추는 헤드라이트에 의지하며 수많은 결정을 해왔다.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여행은 어느 날 꽃이 활짝 피는 절정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곧 여행의 완성인 떠남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행성 역시 그 빛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떠난 이후 남겨질 이들을 위해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수호자인 동시에 파괴자이다. 그리고 그 공생의 중심에 당신과 트리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