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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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주의 세계는 '정글의 법칙'과도 같다. 강한 테마만이 살아남는다. 작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테마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갈 곳 잃은 돈을 빨아들이기 위한 테마주들이 각축을 벌였다. 2차전지·로봇·맥신·초전도체·토큰증권(STO) 관련주부터 한동훈·이낙연 등 각종 정치 테마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테마가 번갈아가며 증시를 달궜다.

올해 증시도 미국 통화정책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낙관론이 조금 더 우세하다. 반도체 섹터가 증시에 다시 주도주로 등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인공지능(AI) 서버 수요가 폭발하면서 반도체 경기가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대표 주도주는 이변 없이 반도체 섹터가 될까. 그 밖에는 어떤 테마주들이 유행을 몰고 올까.

1일 <한경닷컴>은 증권사 6곳(대신·메리츠·미래에셋·유안타·KB·하나) 소속 강남 소재 지점 프라이빗뱅커(PB)들을 대상으로 '2024년 크게 오를 테마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문을 진행했다. 강남은 고액자산가들의 요람과도 같아서 PB들도 에이스 중의 에이스만 모여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AI와 반도체가 만났다…"10년짜리 무적 테마"

대부분 PB들이 공통으로 꼽은 유망 테마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였다. 업황 개선을 목전에 둔 반도체는 이젠 AI와 따로 떼어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해 졌다. 첨단 AI 산업이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성장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상반기 증시에서 생성형 AI가 주인공이었다면 하반기는 전력 소모란 단점을 보완한 온디바이스 AI가 크게 부각됐다. 이처럼 AI 시장이 계속 커지면서 올해 반도체 시장이 역대 최대 매출을 거둘 것이란 전망이 퍼지고 있다. 캐나다 반도체 전문 분석 업체인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6000억달러(약 770조원)를 웃돌 것으로 점쳐진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영환 대신증권 청담WM센터장은 "AI는 내년만 주도주라기보다는 2차전지처럼 10년짜리 테마라고 생각한다. AI라는 큰 틀 안에서 이를 활용하는 여러 섹터가 순환매를 보일 전망"이라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온디바이스 등 기술주 위주의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특히 세계 밸류체인 중 우리나라 기업이 확실한 주도권을 쥔 메모리와 온디바이스 관련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매수를 권했다.

아울러 이경준 유안타증권 금융센터압구정본부점 부장도 "반도체 후공정 역량 강화에 적극적인 대장주들을 주목해야 할 때"라면서 같은 두 종목을 추천했다. 그는 "엔비디아 AI서버 후공정 업체들의 생산능력(캐파) 증설이 완공되면서 엔비디아의 2차 실적 랠리가 가능해 보인다. 엔비디아 외에도 테슬라와 AMD, 인텔 등 주요 업체들의 자체 서버 개발도 마무리되면서 이를 제조하는 후공정 반도체 섹터들이 크게 수혜를 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종원 하나증권 강남파이낸스WM센터 차장은 "크게 보면 반도체 업황은 이미 올 4분기부터 턴어라운드(실적 개선)를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감산 효과로 반도체 가격이 바닥을 지난 데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과 물량이 동반 상승하는 구간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짚었다. 이 차장은 "AI가 반도체 전 영역에 적용되기 시작한 만큼 이젠 어느 기업이 데이터를 먼저 확보하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올해 부진한 게임·바이오…"내년엔 웃는다"

이 밖에도 올해를 빛낼 테마주로 △원전 △게임주 △바이오 △소비재 등이 추천됐다.

먼저 원전주다. 정부가 올해 초 발표를 목표로 수립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전 증설 계획이 담길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 기대감도 큰 상황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3월께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기다리고 있고 폴란드 원전 건설 2단계 사업에서도 두산에너빌리티 등 우리 기업들의 우위가 예상된다. 이종원 차장은 "원전주는 현 정권 초기에 급등한 이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다시 부각될 기회가 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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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약세를 거듭했던 게임주를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백두희 메리츠증권 도곡금융센터 부장은 "신작에 대한 기대와 실망, 실적충격(어닝쇼크)을 반복하면서 주가는 평가가치(밸류에이션)상 부담없는 영역에 다다랐다"며 "올해 애플 비전프로를 중심으로 개화할 메타버스 시장에서 게임주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며 최대 수혜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관련 개별 종목으로는 엔씨소프트를 추천했다. 엔씨소프트의 현 주가는 '리니지 모바일' 출시한 2017년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다. 여기에 최근 출시한 PC용 신작 'TL'(쓰론앤리버티)의 과금 수준과 점유율도 기대치를 밑돌면서 주가는 상승 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백 부장은 주가가 바닥은 다졌다고 봤다. 그는 "어닝쇼크와 증권가 비관론이 더해지며 게임 대장주에서 '시장 소외주'로 밀려났지만 최악의 순간은 지났다고 본다"며 "캐시카우인 리니지모바일 매출 하락세가 완만해 지는 중이고 TL의 국내 PC방 점유율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추세"라고 했다. 이어서 "올해터 글로벌 파트너사인 아마존게임즈를 통해 TL의 해외서비스가 예정된 만큼 실적이 우상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마찬가지로 작년 부진한 흐름을 보인 바이오주도 올해 반등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장의성 미래에셋증권 반포역WM지점장은 "고금리 피해주의 대표 업종이었던 바이오 업종이 두루 반등할 전망"이라며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서 글로벌 '거대 제약회사'(빅파마)들이 중소형 바이오텍(생명공학)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에 활발히 나설 것인 만큼 투자심리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손 끝에서 느껴지는 가계 분위기에 착안해 소비재를 추천하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 악화 상황이 길어진 가운데 대출금 상환 등으로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는 수요가 커질 것이란 얘기다.

김주빈 KB증권 도곡스타PB센터 부장은 "가계 필수 소비재인 자동차와 화장품, 의류 업종 가운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소비재 중심으로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본다"며 "대표적으로 각 업종에서 기아, 아모레퍼시픽·클리오·한국콜마·코스맥스,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CJ대한통운 등을 사모을 만하다"고 권유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