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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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소비가 부진한 와중에도 백화점 업계에서는 연매출 신기록 점포가 줄을 이었다. 국내 매출 1위 점포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연매출 3조원을 돌파했고, 40여 년간 강북 상권을 대표한 롯데백화점 본점도 2조원 매출 고지를 밟았다. 서울 밖에서는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가 처음으로 연매출 2조원을 달성했다. 3대 명품 브랜드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없이 시작한 MZ(밀레니얼+Z세대)세대 놀이터 더현대 서울도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간 연매출 1조원 점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초에 23만원어치씩 판 신세계 강남부터 에루샤 없이 1조 낸 더현대서울까지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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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빅3' 중 매출 신기록을 달성한 점포가 여럿 나왔다.

우선 2019년 단일 유통 점포 중 처음으로 매출 2조원을 넘어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4년 만에 매출 3조원의 벽을 뚫었다. 지난달 20일 기준 누적 매출이 3조원을 달성해 '3조 클럽'에 입성했다. 2000년 문을 연 강남점은 국내 첫 연매출 2조원 점포(2019년)에 이어 첫 연매출 3조원 돌파 점포 타이틀도 갖게 됐다.

연매출 3조원은 하루 영업시간 10시간을 기준으로 1초에 23만원씩 판매한 셈이다. 강남점의 영업면적 3.3㎡(평)당 매출은 1억800만원에 달한다.

연매출이 3조원을 넘긴 백화점 점포는 세계적으로도 영국 해러즈 런던(2022년 매출 약 3조6400억원),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약 3조1600억원) 등 소수에 불과하다. 신세계 관계자는 "독보적인 브랜드 수와 상품기획(MD) 구성, ‘1등 백화점’을 향한 그간의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강남 3조·강북 2조·에루샤 없어도 1조…신기록 쓴 백화점
서울 강북에서도 매출 2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 백화점이 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1979년 개점한 본점이 지난해 매출 2조원의 벽을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22년 역대 매출(1조9343억원)을 거둔 본점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누적 매출 2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롯데백화점이 잠실점과 함께 운영 중인 명품관 에비뉴엘 잠실점이 지난달 27일 기준으로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명품관 단일점포가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비뉴엘 잠실점은 2014년 개점 후 매해 매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바 있다.

아울러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2021년 롯데월드몰을 편입한 후 백화점과 에비뉴엘, 월드몰이 시너지를 내 2022년 연매출이 2조5982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2조원 후반대 매출을 거둘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신세계 강남점에 이은 매출 2위 점포는 롯데백화점 잠실점으로 점쳐진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사진=신세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사진=신세계
서울 밖에서도 연매출 2조원을 달성한 점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부산의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가 지난해 연매출 2조원을 달성하면서다.

전국 70여 개 백화점 점포 중 서울 외 지역 매장이 연매출 2조원을 넘어선 것은 센텀시티가 유일하다. 2009년 개점 후 비수도권 점포 중 처음으로 2016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센텀시티는 개점 14년 만에 연매출 2조원도 달성했다. 부산 밖 고객 비중이 절반 이상(55%)을 차지하며 외지 고객을 끌어모은 결과다.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신세계 센텀시티는 세계 최대 규모를 바탕으로 백화점의 기존 공식을 넘어서는 혁신을 지속하며 성공적인 글로벌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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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은 지난해 더현대 서울의 연매출 1조원 달성으로 주목받았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달 2일까지 총 1조41억원의 매출을 거둬 개점 후 33개월 만에 연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이는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간에 해당하는 기록이란 게 현대백화점 측 설명이다. 그동안 에루샤 매장이 없었지만 지난달 21일 루이비통 여성 매장의 입점으로 추가 매출 성장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더현대서울은 유행을 선도하는 팝업스토어(임시매장)와 디자이너 브랜드를 내세워 연매출 1조원을 넘겼다"며 "국내 소매판매가 지난해 7월부터 역성장으로 돌아선 것과 달리 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엔 항상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형 백화점 3사의 전국 매장 수는 롯데백화점이 32개로 가장 많고 현대백화점(16개)과 신세계백화점(13개) 순이다.

신기록 점포 비결은…VIP·MZ 지갑이 관건

사진=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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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지난해 소비 한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수고객(VIP)이 지갑을 연 점포와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 고객층의 마음을 잡은 점포가 활약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강점을 지닌 명품 부문 기반으로 탄탄한 우수고객(VIP) 수요가 이어졌고, 최근 백화점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2030 세대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늘어난 외국인 고객 공략에 성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경기둔화에도 VIP 고객은 꾸준히 지갑을 열었다. 지난해 강남점 구매 고객 중 VIP 비중은 절반(49.9%)에 달했다. 신세계의 다른 점포 평균(35.3%)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 100명에 달하는 VIP 서비스 전담 인력과 등급별 세분된 VIP 라운지 등으로 견고한 우수고객층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롯데백화점 본점 역시 본점 우수고객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가량 증가했다. 우수고객이 본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5년 전보다 5%포인트 이상 뛰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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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20~30대 고객층 확대도 관건으로 작용했다. 각 백화점은 MZ세대가 선호하는 패션 브랜드와 팝업스토어를 끌어모으며 지갑 열기에 나섰다.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지난해 신규 고객 매출의 절반이 20~30대 고객에게서 나와 확고한 고객층으로 자리 잡았다. 강남점 구매고객 중 30대 이하가 40%, 20대는 10%를 차지했다. 이는 MZ세대가 선호하는 패션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강남점 리뉴얼을 진행한 점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뉴컨템포러리 전문관을 시작으로 지난해 남성 컨템포러리 전문관, 프리미엄 스포츠·아웃도어 전문관 등을 새단장한 결과, 지난해 스트리트 캐주얼과 스포츠·아웃도어 매출은 각각 94.6%, 51.6% 뛰었다. 이 같은 MD 개편은 중국 싼커(개별여행객) 등 개별여행객 중심으로 재편된 여행 트렌드와도 맞물려 외국인 매출이 전년보다 587% 뛰었다.

2년 9개월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더현대 서울 역시 MZ세대 집객에 성공한 점이 비결로 꼽힌다. 마뗑킴’, ‘시에(SIE)’ 등 2030세대에게 인기 있는 온라인 기반 패션 브랜드의 ‘백화점 1호 매장’을 잇따라 유치시킨 결과, 영패션 중심으로 매출이 가파르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영패션은 2021년 개점 당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두 배가 넘는 수준인 13.9%로 확대됐다. 또한 지난해 더현대 서울 패션 매출은 개점 첫해보다 113.2% 증가해 전체 매출에서 23.1%를 차지했다.

정지영 현대백화점 사장은 "글로벌 수준의 MD 역량과 더현대 서울에서만 만날 수 있는 K패션 브랜드 등 참신한 콘텐츠 발굴 노력, 이로 인한 객단가 상승 등이 최단기간 1조원 돌파 기록에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